강만익·탐라문화연구원·논설의원

지동궤(紙洞匭)는 경상도 남해안 일대에서 마을의 중요한 문서를 넣었던 궤를 말한다. 이것은 전국적으로 존재했던 마을문서고로 보이며, 제주에서는 '지둥궤'라고 부른다. 그러나 제주지역 지동궤는 그 중요성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여 「제주어사전(2009)」과 「제주민속사전(2012)」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제주의 선조들은 지둥궤를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들을 담은 상자로 인식하며 소중하게 여겼다. 서귀포시 도순마을에도 '지둥궤'가 있었다. 여기에는 마을이 형성된 이후부터 작성된 마을문서들이 보관되어 있다. 마을에서 지둥궤를 열어 문서를 열람하는 것은 아무에게나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지둥궤의 문서를 통해 주민간 갈등을 해결해야 할 때도 지둥궤를 열어야 한다는 의견과 그래도 함부로 열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으로 나누어지는 등 마을에서 지둥궤 개봉 문제는 매우 신중하게 결정해야 했던 사안이었다. 이것은 지둥궤에 있던 마을주민들의 선조와 관련된 문서(특히 신분관련)들이 공개될 경우 주민간에 불필요한 오해와 분란을 일으켰던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지둥궤는 쉽게 열지 못하는 '판도라의 상자'이기도 했다. 

지둥궤는 마을의 역사와 조상들의 일상사를 기록한 고문서들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보물상자였다. 따라서 지둥궤를 보유한 마을은 그것이 없는 마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문화적 권위를 인정받았다. 이러한 지둥궤들은 4·3 사건으로 마을사무소가 전소되면서 귀중한 문서들을 품은 채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으며, 상대적으로 4·3의 화마(火魔)를 적게 입었던 마을에는 지둥궤가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사례가 있다.      

지둥궤는 어떤 문서들을 품고 있었을까? 실례로 도순마을 기둥궤에는 1727년에 작성된 '하원리좌목정간(下院里唑目井間)', 1812년부터 3년마다 작성된 호적중초(戶籍中草) 그리고 동접례기록, 혼례홀기, 기우제홀기, 포제홀기, 절목, 화전세 영수증 등이 남아 있어 이를 통해 마을주민들의 통과의례 및 화전생활, 자연재해 극복 노력을 알 수 있다. 

도순마을에서 지둥궤는 마을이장이 교체될 때 반드시 밀봉 여부를 확인한 후, 후임이장에게 인계되었다. 특히 신구 이장 간에 지둥궤를 인수인계하거나, 마을원로들의 동의를 얻어 지둥궤를 개봉해야 할 때는 향을 피워 놓고 간단한 음식을 차려 절을 하는 등 지둥궤에 예를 표했던 풍습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목재로 만든 기둥궤들은 썩어가면서 버려지거나 불태워졌고 현재는 플라스틱 상자나 캐비넷, 금고함으로 대체되었다. 그렇지만 여기에 보관된 문서들은 장기간 습기에 노출되면서 하루가 다르게 변형, 훼손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더 늦기 전에 공공기관이 지둥궤 문서들을 수합해 관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했으면 한다. 이런 역할을 책임감 있게 수행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제주기록원'(가칭)일 것이다.    

현재는 제주도청 2청사 1별관 자리에 위치한 지방자치사료관이 수집된 기록물들을  관리하고 있다. 제주도청에서는 제주특별자치도 민간기록물 수집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라 민간기록물관리위원회를 구성해 민간기록물에 대한 심의와 자문을 받으며 민간기록물 확보와 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행정기관과 마을 문서들에 대한 확보와 보존노력을 하면서 제주기록원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지둥궤 문서들은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고 있어 마을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자료가 되고 있다. 지둥궤가 사라진다는 것은 마을역사와 문화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지둥궤의 역할을 넘겨받을 '제주기록원'은 제주 마을의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지키고 계승하는 최후의 보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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