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년 전 사실조사 ‘산 넘어 산’

제주지방법원 8일 349명중 14명 첫 심문기일 진행
사망기록·불법 구금 여부 등 구체적 사실관계 쟁점
군사재판 무효화 담은 4·3특별법 개정안 처리 과제

70여년 전 군사재판을 받은 제주4·3 생존 수형인에 이어 행방불명 수형인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재심청구서가 제주지방법원에 접수된 가운데 8일 첫 심문기일이 진행돼 관심을 모았다. 생존 수형인과 달리 행방불명 수형인의 경우 사망기록과 불법 구금 등 사실관계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관계 확인 난관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8일 오전 내란실행 및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70여년 전 옥살이를 한 고(故) 김병천씨 등 행방불명 수형인 14명에 대한 재심사건 첫 심문기일을 진행했다.

지난해 6월부터 제주지법에 재심이 청구된 행방불명 수형인은 모두 349명으로 이중 14명에 대한 심문을 우선 진행했다.

14명에 대한 심문을 토대로 쟁점이 되는 사안을 우선 정리한 후 349명에 대한 사실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재판부 판단에 따른 것이다.

다만 생존 수형인과 달리 행방불명 수형인의 경우 사망 여부부터 불법 구금 및 재판 기록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 확인이 쉽지 않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행방불명 수형인 가족 진술 등 간접 증거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판부도 “행방불명 수형인들이 사망했을 것이라고 짐작은 하지만 법적 판단은 다르다”며 “당시 판결이 있었는지 여부, 호적과 수형인 명단이 다른 경우 동일인인지 여부 등 쟁점이 상당히 많다”고 밝혔다.

또 “검찰에서도 할 수 있는 사실조사와 증거조사를 최대한 해봐야 할 것”이라며 “체포과정이나 불법 구금 여부 등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문성윤 변호사는 “구체적인 명단은 없지만 형무소에서 사망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재심청구인 나이가 대부분 90∼100세로 이분들이 돌아가시면 재심을 청구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된다”고 강조했다.

문 변호사는 이어 “재심청구인 중 4·3 당시 사건을 직접 경험한 분만 증언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여 심문기일을 추후 결정키로 했다.

△4·3특별법 개정 과제

이날 법정에서는 군사재판 무효화 등을 담은 4·3특별법 개정안 처리 여부도 언급돼 관심을 모았다.

재판부는 “4·3특별법 개정과 관련한 뉴스를 접했다. 제주지역 국회의원 세분 모두 공약으로 특별법 개정을 제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변호인측에 국회 처리 가능성을 물었다.

그러자 문 변호사는 “특별법 개정안은 군사재판을 무효화 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며 “군사재판에 대해 일일이 재심을 청구할 수 없고, 유족이 없으면 재심 청구를 할 수 없는 형평성 문제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대 국회에서는 정부부처간 이견으로 자동 폐기됐지만 조만간 개정안이 다시 발의될 것”이라며 “특별법이 통과되면 재심을 진행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4·3 행방불명 수형인 명예회복을 위한 근본대책으로 4·3특별법 개정 필요성이 법정에서 제기된 셈이다.

재심 청구방식보다는 4·3특별법 개정을 통해 불법 군사재판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경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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