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범 행정학 박사·제주공공문제연구소장·논설위원

작년 8월, 9월 조국 사태가 대한민국을 휘몰아칠 당시 원희룡 지사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원더풀TV에서 '친구 조국아, 이제 그만하자'며 사퇴를 촉구했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원 지사는 조국 전 장관과 서울대 법대 동기동창이다.  

유례없는 셀프 청문회 후 나흘 만에 가까스로 열린 국회 조국 장관 인사청문회는 청문 보고서도 채택하지 못한 채 맹탕 · 뒷북 청문회로 끝났다. 장관 검증 과정에서 드러난 실체는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하자 재차 원 지사는 SNS를 통해 '국민의 뜻을 저버린 권력의 오만' 이라고 저격했다. 조국 전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조국 사태의 시작은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법무부 장관 지명부터다. 거론하기조차 새삼 피로감을 불러올지 모르지만, 광화문과 서초동에서는 조국 퇴진과 조국 수호를 외치며 진영 간 극단적 대치가 넉 달 남짓 이어졌다. 광장 정치의 폭주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였고, 여야는 장외 세 대결에 몰두하느라 민생현안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정파적 이해관계의 몰입은 국민의 이해관계 반영에 한계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무능한 정치로 고통 받는 것은 국민들 몫이었고, 실종된 정치 복원이란 요원한 과제만 남겼다. 진행 중인 사법적 판단과 무관하게 문재인 정부의 최대 인사 스캔들로 기억될지, 검찰 개혁의 마중물로 역사에 기록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지난 10일 제주도가 안동우 제주시장 후보자와 김태엽 서귀포시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개최를 요청했다. 지난달 칼럼을 통해 무늬만 행정시장 공모제의 오명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도민사회 민심을 새겨듣고, 도민 눈높이 맞는 도덕성과 사명감 갖춘 인사의 발탁을 희망한 바 있다. 그럼에도 후보자 지명과 함께 드러난 김태엽 후보자의 음주운전 전력은 삽시간에 도민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자질 시비를 넘어 자칫하면 도정 불신으로 비화될 소지가 다분해 보여서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원희룡 지사에게 김태엽 후보자는 어떤 존재일까. 비서실장을 거쳤고, 서귀포 부시장을 하면서 원 지사의 의중을 적확하게 아는 몇 안 되는 핵심 참모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김 후보자의 다년간의 공직 경험은 제주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행정적 관심과 배려가 부족한 서귀포시를 균형감 있게 이끌 수 있는 역량을 높게 샀을 수도 있다. 

물론 도덕적 흠결 없는 사람 찾기도 하늘에 별 따기다. 그렇다고 설마 일 잘할 사람을 뽑기 위한 정당한 인사권 행사라고 봐줄 도민들은 몇이나 될까. 아무리 법적 구속력 없는 형식적 인사청문회가 일상화되어 왔다손 치더라도, 도의회가 도지사의 인사권 행사의 정당성에 면죄부를 줄리 만무하다. 

지난 8일 원희룡 지사는 '평생 가장 치열한 2년을 살겠다'는 각오로 대권 도전을 공식화했다. 이 자리에서 '부모 때문에 환경 때문에 가진 소질을 충분히 발휘 못하고 좌절하는 후배·자녀들에게 기회균등의 기회와 좋은 자극을 주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공정과 정의에 대한 원 지사의 소신과 철학을 국민들에게 평가받겠다는 포부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원 지사에게 남은 2년은 떨어지는 낙엽 하나도 조심해야 할 고난의 시간이다. 작은 정치가 모여, 큰 정치를 이룰 수 있다. 조국 장관 취임 후 피의 사실 공표 제한 추진에 대해 '본인은 회피해야 하고, 제도로는 제척해야 한다'고 맞받아쳤던 원 지사다. '형식적인 장관이 되겠지만 정권의 종말을 앞당기는 역풍이 될 것'이라던 자신의 말을 되새겨보면 답은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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