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잃어버린 마을, 다랑쉬 마을로 향했다. 4·3 순례길 걷기에 참여한 것이다. 용눈이 오름과 다랑쉬 오름 사이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무덤이 있다. 해마다 벌초 길에 헤매던 곳이다. 그곳을 지날 때면 알 수 없는 정령이 내 몸에 다가와 알 수 없는 단어로 중얼거린다. 잘 살고 있냐는 물음인 것도 같고, 그렇게 살아도 되겠냐는 책망인 것도 같다. 몸을 자꾸만 움츠리게 된다. 넓고 깊은 오름 앞에서 나는 자꾸만 작아지는 것이다. 

다랑쉬 굴로 가는 길에는 등심붓꽃과 질경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밟아도 밟아도 일어서는 질경이, 보랏빛 촛대를 곧장 세우고 있는 등심붓꽃은 다랑쉬로 향하는 긴 무리들을 어리둥절 쳐다보고 있었다. 오가는 발길이 드문 곳이라 이 곳에서 자라는 다년생 풀들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두려움이 대상일 것이다. 

농로를 따라 대나무 숲을 지나 질경이, 등심붓꽃 군락을 지나니 다랑쉬 굴이 보였다. 그 앞에서 잠시 묵념을 하고, 다랑쉬굴에 얽힌 사연을 듣는다. 1948년 11월 18일을 전후하여 종달리, 하도리 일대에 살던 4가족이 이 곳에 숨었다가 군·경 토벌작전에 의해 질식사하였다. 9세 어린이와 51세의 여성 등 11명의 시체가 이 곳에서 발견되었다. 1991년 12월 22일의 일이다. 숨진 자들과 함께 이 곳에 숨었다가 전날 빠져나온 채정옥 할아버지에 의해 50여 년 만에 밝혀졌다. '제주 4·3연구소' 조사팀이 이를 발굴해 세상에 알렸다. 굴 속에서 발견된 뼈들은 가족의 허락도 없이 또다시 당국에 의해 김녕 바닷가에 뿌려지고 말았다. 역사는 그들을 두 번 죽이고 말았다. 

다랑쉬굴의 입구는 좁았다. 어떻게 이 구멍 속으로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신기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라도 숨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생각하니 울컥함이 밀려왔다. 굴 에서는 가지런히 놓여 있는 시체와 무쇠솥, 된장항아리, 놋쇠 숟가락 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군·경 토벌대가 수류탄을 쏘아 그 연기가 안으로 들어가게 하고 굴 입구를 막아버렸으니 그 속에서 숨이 멎을 때까지 발버둥치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숨이 막혀오면서 가슴의 통증이 저릿하다. 실제로 시체의 손톱 발톱이 다 빠져 있었다 한다. 살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가슴 쥐고 나무 밑에 쓰러진다 독립군 가슴에서 쏟는 피는 푸른 풀 위 질벅해 만리창천 외로운 몸 부모 형제 다 버리고 홀로 섰는 나무 밑에 힘도 없이 쓰러졌네 산에 나는 까마귀야 시체 보고 우지마라 몸은 비록 죽었으나 독립 정신 살아있다 나의 사랑 대한 독립 피를 많이 먹으려나 피를 많이 먹겠거든 나의 피도 먹어다오 피를 많이 먹겠거든나의 피도 먹어다오 (독립군 추도가 가사)

4·3의 진실에 대해 목이 맨 채 진중하게 해설을 하시던 오승국 시인이 혼잣말처럼 '독립군 추도가'를 나지막이 불렀다. 굴 주변을 둘러보던 사람들이 흥얼흥얼, 중얼중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 앞에서 마음은 매한가지인 것이다. 노래를 한 참 듣는데, 나무에 앉아 까악까악 울던 까마귀 떼가 조용해졌다. 그들은 이 죽음의 비밀을 알고 있었을까.

이 비밀을 알려주었던 채정옥 할아버지가 지난봄에 돌아가셨다 한다. 26년생이시니 94년을 사셨다. 한국현대사의 한 많고 굴곡진 세월을 다 경험하신 셈이다. 50여년 굴 속에 갇혀 숨진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가슴에만 묻고 사셨으니 그 가슴은 또 어떻게 됐을까. 벙어리 냉가슴이 따로 없다. 어디, 채정옥 할아버지만 그렇겠는가. 4·3 사건으로 인해 숱한 고통과 비밀을 가슴에만 묻어둔 이들이 지금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지인의 어머니를 뵈러 요양원에 간 적이 있다. 돌아가실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직감했는지 처음 본 사람인데도 주저리주저리 당신 살아온 인생을 털어놓았다. "이녁한티민 골암서"며 내민 말은 첫 남편에 대한 고백이었다. 

"우리 아들은 몰람서. 나가 두 번 갔주게. 쳇 번째 사람은 공부 막 하영 헌 사름. 게난 동네에서도 막 알아줬주게. 겐디 4·3 터지난 호루제 저냑, 동네 청년이 완 무시거랜 곧는 거 닮안게만은 밥 먹단 화르륵 튀언 게 그게 끝이라. 냉중에 알앙보난 산으로 튀단 총 맞안 거시기 동산 아래서 발견되언 묻었주게. 경 묻은 것만도 다행이라. 그 시절엔. 어드레 간직사 모르는 게 하. 막 하주게. 게난 이녁한티만 골암서, 우리 아들은 모르는 말" 

아들에게 말 못할 말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역사는 개인에게 많은 비밀을 갖고 살아가도록 만들어버렸다. 한 동네 안에서도 총을 겨눌 수밖에 없었던 현실, 수모와 원한을 품고 서로 모르는 척 살아가도록 강요한 것이다. 친구의 아버지가 내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내 어머니가 서북청년단의 몸종 노릇을 했다는 걸 모르는 척 살아가야한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러니 대나무 숲에서 우는 바람은 서슬 푸르게 운다. '사르락사르락 휘리릭휘릭…' 뱀들도 무서워 도망간다는 무서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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