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택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감사관 주무관

공직자는 불용 물품, 학교 시설 등 공용물을 정당한 사유 없이 사적인 용도로 사용ㆍ수익해서는 아니 되는데, 공직자가 공용물을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공용물의 사적 사용 사건은 최부와 송흠의 역마 일화, 이순신과 성박의 오동나무 일화 등이 있는데 허적의 유악(油幄) 사건이 유명하다. 그 전말은 이렇다.

유악은 비가 새지 않도록 기름을 바른 천막인데 왕실에서만 만들어서 쓰는 귀한 물자로 왕의 윤허 없이는 왕실종친이라도 사사로이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숙종 6년(1680년) 3월 남인의 영수 허적은 조부 허잠이 충정공의 시호를 받게 되어 이를 축하하는 잔치를 개최하게 되는데 이날 공교롭게도 비가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숙종은 왕실 용품인 기름 천막을 허적에게 빌려 주어 비를 피하게 하라는 명을 내린다.

하지만 명이 내려지기 전에 이미 허적이 왕의 허락 없이 기름 천막을 빌려간 상태였다. 이를 알게 된 숙종은 진노하였고 허적이 권세를 믿고 왕을 업신여긴 행동이라고 단정하고 남인이 거의 차지하고 있던 군권을 서인에게 넘겨 버리는 인사개편을 단행해 버린다.

결국 이 유악사건이 발단이 되어 경신환국으로까지 확대되는 등 이 사건은 허적, 윤휴를 포함한 남인들의 몰락의 계기가 되어 버린다.

최부의 집을 방문한 송흠에게 "내 집까지 오는 것은 개인적인 사행길인데 어찌 역마를 타고 올 수가 있느냐"며 질책한 최부의 말처럼 공직자는 나라의 예산과 공용물이 개인의 소유가 아닌 공공의 소유임을 명심하여 올바르게 사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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