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순 제주4·3범국민위원회 이사장

4·3 70주년이 엊그제같은데 벌써 두해가 흘렀다. 현 정부의 등장과 함께 그 어느때보다도 4·3 특별법개정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 올랐던 2년이었으나, 20대 국회에서 그 발의안이 폐기되면서, 그 열망이 현실화되기는 커녕 자칫 특별법개정을 위해 지금껏 쏟아부은 노력과 헌신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4·3특별법은 힘겨운 진통을 겪으면서 태어난 법이다. 그러하기에 제대로 된 과거사 청산법이라고 부를 수 없는 반쪽 자리 법이었다. 인권유린과 말살의 과거사를 청산하는 원칙은 이미 확립되어 있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배상, 명예회복, 정신계승이 그 기본 얼개이다. 과거사법은 그 원칙을 제대로 실천하는 법이어야 함에도 4·3특별법은 모든 면에서 미흡하였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시절부터 지금까지 진행되어 왔다고는 하지만 진상규명작업은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멀다. 과거사 배상의 핵심을 이루는 피해자 명예회복과 그 핵심적인 실천인 배·보상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 불법적인 군사재판에 의해 무고하게 처벌되고 목숨마저 빼앗긴 사람들은 어떠한가. 당사자와 유족들은 잔혹한 연좌제 아래에서 지난 70년을 숨죽여 살아왔고, 진상규명 작업과 별개로 범죄자라는 낙인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로 재심이라는 사법절차에 각자 알아서 힘껏 호소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목소리 높이고 해마다 그 희생자들을 추념하고 슬퍼한다고 해서 4·3의 비극이 지워지고 왜곡된 과거의 역사가 바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대표들이 합의한, 최종적이고 강제력을 갖는 법률로서 과거사 청산의 원칙을 온전히 담는 법안이 있어야 한다. 현 4·3특별법은 개정되어야 하며, 그 역사적 책무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4·3 72주년 추념식에서 특별히 4·3. 특별법 개정에 대한 지원과 관심을 호소했고, 우리 국민은 4·15총선에서 집권 여당에게 177석의 의석을 몰아줌으로써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정쟁과 이념의 갈등에 빠지지 말고 개혁과 화합, 상생의 사회로 힘차게 나아갈 것을 주문했다. 올초부터 몰아친 코비드-19 사태에 대한민국의 대응이 세계 국민들로부터 주목을 받으면서 우리 나라의 국격이 어느 국가에 못지 않은 선진적인 수준에 올라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인류 사회에 모범이 되는 길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식민지로서의 막대한 피해, 그 뒤를 이은 동족상잔의 전쟁과 군부독재의 인권유린이라는 비극을 골고루 참혹하게 겪은 과거사를 떨치고 3만불의 경제성장을 이룩했다는 자부심만으로는 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높은 국격이란 한반도에서 벌어진 참혹한 과거사에 대해 인권과 평화의 이름으로 마주하고, 그 피해자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하고 배상하는 것, 다시는 그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에서 출발하고, 완성된다. 거기에는 예산이 어떻고 돈이 어떻다는 셈법이 결코 들어갈 수가 없다. 

21대 국회가 열렸다. 지금부터 올해가 가기전까지 뜻을 같이하는 모든 이들의 힘을 모아, 4.3특별법 개정을 완수해 내야 할 때이다. 그와 같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절박한 마음을 담아 제주도의 민·관이 공동으로 함께 하는 '제주 4·3특별법 개정 쟁취를 위한 공동행동'이 출범했고, 지난 70주년 추념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국조직으로 발족한 사단법인 제주4·3 범국민위원회도 이에 함께 했다. 아무쪼록 올해가 가기 전 지난 70년간의 오랜 염원이 실현되어 지하에 계신 제주 4·3 희생 영령들이 활짝 웃으시기를,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명예회복이 신속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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