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위기 발발 이후 우리나라의 대다수 지방자치단체들은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방세 수입의 대폭적인 감소와 교부금 등 중앙정부의 지원금 삭감이 주된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지만 민선 자치단체장들이 공약한 각종 사업비와 경영수익사업의 적자 또한 한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아시안게임 등 대형사업이 많아 지방채를 남발한 어느 광역시의 경우에는 재정의 정상운용이 어려울 정도라고도 한다. 그 정도가 어떠하든 지금 대다수의 지방정부들은 조직과 인력을 축소하고 투자사업을 정비하는 등 구조조정에 혈안이 되어 있다. 왜냐하면 올 3월부터 재정상태가 취약한 지방자치단체에 대해서는 행정자치부가 정밀 재정진단을 실시하고 아주 부실한 곳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을 단행함과 동시에 재정운용의 자치권을 제한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주 산하의 시가 파산할 경우 주정부가 민선시장을 파면하는 동시에 시의 살림을 맡아서 관리할 파산관리인을 내려보낸다. 뿐만 아니라 시의회의 핵심권한인 입법권을 정지시키고 때로는 다른 시와의 합병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는 지방경영도 기업경영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IMF 이후 기업계에 몰아닥친 구조조정의 소용돌이가 조만간 지방경영에도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게 된다. 이러한 때에 제주도가 제주발전연구원을 통해서 제주도 지방채의 상환대책과 재정확충방안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하고 재정의 문제점과 과제를 짚어본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 목적이 지방재정의 어려움을 다시 한 번 더 잘 이해해보기 위한 차원이라면 그 의미가 반감된다. 왜냐하면 제주도의 재정문제는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을 정도로 그동안 언론매체 등에서 자주 논의되어 온 주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만에 하나 재정문제의 책임을 전가하거나 회피하려는 의도가 섞여 있다면 정말로 안 될 말이다. 세미나에서 발표된 내용들을 보면 이제는 더 이상 탁상토론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제주도의 재정상태는 위기에 처해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세미나에서 발표되고 논의된 내용 중 다시 한 번 공론의 필요가 있는 몇가지 과제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첫째, 재정담당 인력의 전문화이다. 지금 제주도의 재정은 운영의 효율성이 필요할뿐만 아니라 엄밀한 재정 분석과 진단, 적절한 사업 개발 및 평가 등이 요구된다. 특히 지금과 같이 어려운 여건하에서 건전재정을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는 담당자들이 제대로 된 능력과 사명감, 그리고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둘째, 지방재정 공개의 활성화이다. 재정공개는 재정운영에 대한 주민참여의 첫 번째 전제조건이다. 일전에 논란을 빚었던 지방자치단체장의 판공비 공개 등은 이러한 관점에서 야기된 문제이다. 세입세출예산의 집행상황, 지방채 및 일시차입금의 현재액, 공유재산의 증감현황 등 재정의 운영실태를 적어도 1년에 한 번쯤은 주민들에게 공개해야만 한다.

셋째, 예산집행에 대한 사후평가이다. 현실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집행에 대한 심사분석, 회계감사, 결산 등이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사후평가결과 또한 차기 예산 편성이나 집행에 제대로 반영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심사분석기구를 전문화시키고 일몰예산제도를 도입해서 자치단체장 또는 유력 인사에 의해 예산 편성·집행·결산 등이 자의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어느정도 예방해야 한다.

넷째, 시민에 의한 예산통제이다. 시민이 예산과정에 참여하고, 예산정보의 공개를 요구하며, 예산낭비 및 예산심의기능을 감시하고, 예산회계 및 조세제도의 개혁을 요구하는 일 등은 납세자에게 주어진 고유권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제주도가 기획하고 있는 각종 사업들을 제대로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과제들이 더 논의되어져야 하겠지만 지방경영의 기본은 기업이나 가계와 마찬가지로 건전재정에 있다. 달콤한 공약과 요란한 선전이 남발되기 쉬운 이때에 투표권을 빌미로 복지투정을 일삼는 사람들은 없는가, 가만히 눈여겨 살펴볼 일이다.<허정옥·탐라대학교 교수·경영학>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