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역사학자는 "역사는 글로만 쓰여지는 게 아니라 짱돌로도 쓰는 거"라고 했다. 그 의미를 증명이라도 하듯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책. 강요배의 제주 민중항쟁사 화집 「동백꽃 지다」를 처음 만난 건 10년 전, 제주4·3역사그림전이 열리던 전시장에서였다. 잡지사 기자생활을 하던 당시여서 취재 차 전시장을 들렀고, 덤으로 얻은 화집이었다. 처음 시작되는 그림인 "시원"부터 마지막 쉰 번째 "장두"에 이르기까지 낱낱으로, 혹은 파노라마처럼 연결되며 웅장하고 막힘 없이 파고든다.

섬이어서 그랬을까. 제주의 역사엔 유난히 외세와 부딪히는 일들이 많았다. 여·몽 연합군에 맞서야 했고 왜구의 침탈과 천주교를 등에 업은 제국주의, 일제에 저항하는 광대뼈 불거진 제주민중들의 모습이 새록새록 담겨져 있다.

해방을 경축하는 광장에 동참한 어린아이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바지춤을 걷어올리고 게다짝을 신은 아이가 자기도 8괘의 태극깃발을 같이 들겠다고 나서는 익살스런 품새 속에 이후 청산하지 못한 우리 역사의 단면을 암시하는 것 같다.

자치기구의 설립, 미군 진주, 그 후 혹독한 자연재해와 호열자의 창궐 등으로 이어지는 어려움 속에서 47년의 3·1절 관덕정 발포사건에 이르면 역사를 인식하는 화가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비무장 민간인을 향해 높은 망루에서 발포하는 경찰, 오라리 방화사건을 "폭도의 소행"으로 덮어씌우기 위해 공중 촬영하는 미군정은 자신들이 제일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 사건 조작이 가능한 것으로 여겼겠지만 어림없다. 화가는 그 보다 더 높은 곳에서 가차없이 그들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다. 역사적 진실은 결코 시공(時空) 속에 묻힐 수 없다는 것을 글이나 웅변이 아닌 목탄으로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5·10단독선거를 거부하며 한라산 자락에 무리로 모여 든 백성에 이르면 조여들던 가슴이 트일 것 같다. 한라산의 자태가 어머님 품처럼 다가서고 초원에서 소가 풀을 뜯고 있다. 사람들은 양지바른 곳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눈다. 시국담이어도 좋고 앞으로 펼쳐나갈 세상이야기여도 상관없다. 고사리를 한 웅큼 꺾어 쥔 천진한 소녀의 모습이 진정 바라던 참 평화가 아니던가.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건 무차별적 탄압. 하늘조차 울어버린 소개명령에 삶의 터전은 송두리째 불에 타고 가까스로 병풍을 챙긴 할머니, 시아버지를 들쳐업고 황급히 빠져나오는 며느리의 모습에서 어찌 눈이 찔리지 않으랴.

비학동산에서, 우뭇개해안에서, 표선백사장에서 학살은 이어져 수많은 혼들이 바람까마귀 떼로 날아가고 동백꽃은 통째로 툭 떨군다. 이 때 떨어지는 동백의 선홍빛만 보지말고 왼쪽 편 귀퉁이, 채 녹지 않은 눈 위로 번지는 낭자한 선혈을 보면 차라리 침묵하는 게 낫다.

마지막 그림의 관덕정 마당 십자가에 걸린 장두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일까. 분노, 복수, 허탈, 공포, 원한, 좌절이 버무려져 있다. 아니다. 4·3으로 인해 인간 본성의 넋마저 뺏겨 껍데기만 남은 제주사회의 황폐함을 눈동자에서 읽을 수 있다.<강덕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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