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5일 이른 아침 조금은 낯선 섬, 일본 쓰시마섬(대마도)로 떠나기 위해 4·3유족회 임원을 비롯한 4·3유관단체 관계자들이 속속 제주공항으로 집결했다. 반백년 전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바다에서 숨져간 억울한 4·3수장(水葬)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다.

왜 우리가 대마도를 찾아야 하나. 답은 뻔했다. 반세기전 제주를 붉게 물들였던 4·3당시 제주해안에서 벌어진 수장사건에 희생된 4·3원혼들이 이곳 대마도에서 잠들고 있다고 소식을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공편으로 부산으로 간 후 고속정을 타고 대마도의 중심지인 이즈하라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즈하라의 아름다운 풍광은 과히 감탄할 만했다. 직접 이 곳에 찾아와 본 사람만이 그 느낌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숙소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난 후 지난해 퇴직했지만 55년 동안 대마신문에서 기자생활을 해 온 아카시 마사오씨(80)로 부터 증언을 들었다.

그는 직접 1949년 말부터 1950년 초까지 시신이 발견된 장소를 직접 가리키며 당시의 정황을 소상히 설명해 나갔다.

그 역시 다른 전문가와 마찬가지로 대마도 남서부 해안에서 발견된 시신인 경우 제주4·3으로 수장된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4·3과 한국전쟁 발발 시기에 취재하면서 해안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광경을 목격한 것만 수십 구에 이른다고도 했다.

순례단은 증언을 청취한 이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많은 일본 기자들에게 올해도 먼 이국 땅 대마도에서 위령제를 지내는 이유를 설명했다.

한 일본인 기자는 대한민국에서 이처럼 커다란 역사적 비극이 있는 줄 몰랐다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또한 4·3역사를 왜곡하는 「조선일보」에 맞서 소송 중이라고 했더니 꼭 승리하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9월26일, 순례단은 억울한 4·3수장 영혼이 묻혀있는 서산사(西山寺)로 이동해 정성껏 제단을 마련하고 ‘제주4·3 대마도 수장 위령제’를 봉행했다.

이성찬 회장은 “야만의 역사는 잊혀지기를 강요하고 파헤쳐지기를 완강히 거부해 왔지만 기어이 억울한 수장 희생자들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명예회복을 시키겠다”며 굳은 의지로 주제사를 읽어 내려갔다.

위령제를 마친 후 일행은 한국인 시신이 고이 안장되어 있는 태평사(太平寺)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한국인 표류자 155명의 유골이 안치된 곳이다. 일행들은 ‘표류자지령위’비석 앞에서 지금은 한줌이 돼버린 4·3희생자들의 혼을 넋이 빠지듯 바라보며 울고 또 울었다.

한 유족회원은 “이 시신을 이국 땅에 두고는 도저히 제주로 출발할 수 없을 것 같다”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순례단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이즈하라 관청을 찾았다. 49∼50년대 이곳에서 처리된 한국인 표류자와 관련한 문서가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바람은 물거품이 됐지만 태평사 주지 스님으로부터 “당시 사체가 인양되면 인근 사찰에 안치됐을 가능성이 많다”는 증언을 듣고, 민단에 협조 자료를 확보키로 했다.

2박3일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참가자들은 반인륜적인 수장학살의 진상에 대해 상세히 조사해 억울하게 희생된 영혼들과 그 유족의 한을 풀어야한다고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송승문·제주도4·3사건희생자유족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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