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순덕 제주연구원 연구위원·논설위원

인류의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는 코로나19는 곡예사처럼 비행하면서 사람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매일 발표되는 코로나19 감염 예방 수칙에 따라 사람들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는 불편함을 감내해야 하고, 대면 활동을 자제해야 하는 환경에 길들여지고 있다.     

감염병시대의 화두는 먹고사는 문제로 귀결되어 있는 듯하다. 자고 일어나면 확진자 발생, 동선 공개 등 사회안전망 시스템이 가동되면서 사람들은 긴장하고 경계태세를 늦출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에 대한 예측도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심신이 고달프고 위축되어 있는 우리들의 삶은 무엇으로 위로해야 할까? 이 시점에서 예술의 역할을 생각해 보고, 예술을 십분 활용해 보면 어떨까? 특히 온라인 예술을…. 

그동안 의료진을 위한 격려의 노래, 슬픔에 빠진 시민을 위한 위로 공연 등이 있었지만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예술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언제 예술의 가치를 인지하고 다가가고 소중하게 여길까?
인류 역사상 물물교환을 하면서 자급자족하던 시대를 지나 상업의 개념이 싹트기 시작하면서부터 화폐의 위력은 존재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표면적으로는 돈의 위력을 외면하는 문화가 있었다. 이런 가면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것은 1997년 외환위기(IMF 관리체제) 이후라 생각한다. 2000년대로 접어든 후에는 신자유주의가 극대화되면서 사람들의 판단 기준에 경제가 맨 앞에 놓이게 되었다. 경제적 공황기를 겪으면서 우리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예술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었다. 

잠시 숨을 돌리게 되면서 우리들이 애써 외면했던 예술을 전면에 내세우는 노력을 했고, 마을 단위로 공공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소위 예술 활동이 일상화되고, 지역이 예술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구호도 평범한 말이 되는 시대에 살았다.

그런데 이런 환경이 한시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우리는 물론 세계인이 감염병시대에 살고 있음을 톡톡히 경험하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은 오로지 안전과 건강에 머물도록 내몰리고 있다. 내가 감염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조심하고 격리하는 생활이 일상화되고 있다. 

만일 이 질병이 없었다면 우리들은 어떤 모습으로 현재를 즐기고 있을까? 얼마 전까지 일상화되고 보편화된 행동들이 지금은 나를 위해, 남을 위해 조심해야 하는 긴장의 시대를 살고 있다.

코로나19를 박멸하기 위하여 의료진과 예산이 집중 투입되고 있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한정된 예산 분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총액은 정해져 있고 세부 항목들을 조정하여 방역비로 지출하게 되니까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항목은 삭감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방역과 기초생활 유지 등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획득하면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집단이 발생하고 있다.  

국가든 개인이든 경제적 위기에 처하게 되면 배고픔 해결을 우선순위에 두고 그 외에는 가능하면 절약하려고 한다. 이때 별 고민 없이 삭제되는 항목이 예술과 여가활동일 것이다. 

총탄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도 음악이 군인들의 마음을 녹여주었다는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감동한다. 우리들은 왜 영화의 주인공이 되면 안 될까? 

목숨을 담보로 하여 거창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빵도 필요하고 영양제도 필요하다. 이 두 요소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동반 선택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좋겠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