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어떤 외국인이 서울의 신촌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영어로 연세대학교로 가는 방향을 물어보았는데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장면이 방영되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고 있었다. 물론 어느 한 시점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단면에 불과한 현상이지만 정말 충격적이었다.

영어 조기교육의 바람이 분지도 거의 8년이 되어가고 있고 88년 올림픽을 치르기 전에 영어를 해야된다고 야단법석을 떤 것이 10년이 휠씬 지났는데도 아직도 길 안내에 대한 대화가 외국인과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병적인 현상을 지나 암적인 현상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지금은 국제화의 시대로 가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허둥지둥 서두르기만 했지 구체적으로 변한 모습이 아직 엿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길 안내 조차도 하지 못하는 교육의 결과를 보완하기 위해서 우리는 조기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어릴수록 모방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분명히 효과는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외국어의 학습과정은 일종의 모방의 과정이기에 때문이다.

신경생리학자인 Penfield와 Roberts의 이론에 의하면 어린아이는 대뇌 유연도가 높아 언어를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지만 사춘기 이후는 대뇌 유연도가 점차 낮아져 어린 시절에 배우는 것보다 어렵다. 그 만큼 모방의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어린이들이 부모를 따라 외국에 이민 가서 살 때 어린이들이 부모보다 외국어를 빨리 습득한다는 사실에서도 그 이론이 타당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초등학교의 조기교육 실태는 너무도 준비가 안된 채 진행되고 있어서 효과가 의문시된다. 일정한 이론의 뒷받침 없이 무조건 말하는 데만 치중을 하고 있고 그 열기가 지속적이 되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어서 좋은 효과는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준비가 안된 선생님들에게 200단어 내에서 어설프게 배우는 영어가 제대로 활용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현재 초등학교 학생들은 영어 학원을 거의 다 다닌다. 안 다니면 불안하고 학교 교육으로는 양이 차지 않기 때문이다. 여름방학 때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영어연수를 일정시간 받는다. 제주도의 경우는 탐라교육원에 들어가 약 한 달간 영어교육을 받는다. 교육 내용은 거의 80%이상을 외국인 회화로 채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영어를 정규대학 과정에서 접해보지 못한 선생님들이 많은 어려움을 느끼는 것을 보았다.

외국인으로 교육과정을 거의 채우려 하기보다는 이론 교육은 물론 회화의 과정도 단계적으로 나누어 실시해 마지막 고급 단계에서 외국인 회화로 교육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한국인 교수들도 이론과 어느 정도의 회화 능력을 갖춘 분들도 많이 있다. 그런 분들의 교육이 외국인 보다 더 효과적일 수도 있고 외화 낭비도 없애는 방법이다. 그러니까 30%정도만 외국인 과정으로 하고 경험 많은 한국인 교수진으로 나머지 과정을 이수하도록 한다면 시간은 좀 더 걸리더라도 효과가 더 향상될 것이라는 것을 지난 여름방학 동안의 연수원 교육에서 절감했다.

이제는 지난날의 잘못된 과정이 되풀이 되서는 안 된다. 기초를 충실히 다지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한 영어교육이 이루어지면 지금 보다는 확실히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세계화도 좋지만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영어를 못하는 나라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일본은 잘살기라도 하지 않은가.<곽승엽·탐라대 교수·영어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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