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서 ㈜아이부키 대표 · 비상임 논설위원

호텔을 청년 임대주택으로 공급한 '안암생활'이 어쩌다 정치 전쟁터 한가운데에 서게 되었다. LH와 사회적기업이 협력하여 코로나19 이후 운영이 어렵던 관광호텔을 청년 주거로 탈바꿈한 이 기획은 도심 주거난이 심한 청년세대에 단비와 같은 효과적인 공급이 아닐 수 없다.

건축물의 용도를 변경하는 일은 쉽지 않다. 비주택을 주택으로 바꾸는 일은 특히나 어렵다. 주택을 짓기 위해 따라야 하는 주택법은 상가나 숙박시설을 짓기 위해 따라야 하는 규정에 비해 기준이 훨씬 완고한 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안암생활이 가능했던 것은 청년 세대의 주거불안 문제가 무척 심각하다는 현실인식과 정책적 판단이 지속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언론과 정치권은 부동산 문제만 나오면 정치 대결의 중심으로 만들어버리고야 만다. 그러나 청년주거 문제는 결코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중요한 문제다. 어쩌면 우리의 미래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곳에서 사느냐가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불안한 눈빛으로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이 두려움을 떨칠 수 있는 멋진 공간에서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

부동산 문제를 두고 정치적 대립을 일삼다 이렇게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사실을 간과할 수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을 딴 '지옥고'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점점 늘어나는 청년 1인세대를 위한 질좋은 주거를 충분히 공급하는 문제와 함께, 더 나아가 청년들이 자신들의 생활에 잘 맞는 최적화된 공간계획과 운영 모델이 있어야 한다.

안암생활 모델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공공과 사회적기업이 협력해서 기존에 불가능했던 공급 방식을 개척했다는 점과, 더 나아가 입주 청년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운영을 계획하고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집을 짓는 사람과 살 사람, 그리고 운영할 사람이 최대한 밀착되어 있는 것이 '맞춤형 주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회주택 전환기는 맞춤형 주거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맞춤형 주거가 실현되면 사회관계망이 풍성해지기 시작한다. 집은 우리 삶을 펼치는 플랫폼이고, 그래야 한다. 집이 개인의 소유물로 국한되거나 어쩔 수 없어서 임대해 사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망을 실험하고 펼쳐내는 플랫폼이어야 하는 것이다. 집이 소유의 최종 목표에서, 우리 삶을 펼칠 출발점이자 거점으로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단순한 권력 위계로 작동해왔다. 학벌, 정치 권력, 재력 등이 이 사회에서 서열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러나 사회가 이렇게 단순한 기준을 통해서만 작동된다면 투박한 계층구조가 만들어내는 억압적 환경 때문에 상승욕구가 무뎌지고 유연성과 창의성이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다양한 공동체 형성과 지역권의 자립을 통해 사회를 재구조화 하는 일이 사회의 지속적 발전에 무척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소셜 디벨로퍼라는 새로운 전문가들의 출현이 요구된다. 소셜 디벨로퍼는 지역의 신뢰를 축적하고 더 나아가 다양한 사회관계망을 창조해낼 수 있는 전문가를 말한다.  부동산 개발에 있어 엔지니어링 영역과 활동가 영역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엔지니어링부터 문화, 복지, 경제적 영역을 두루 중재하고 연결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통합적 부동산 개발자가 필요한 것이다.

안암생활은 사회주택 영역을 우리 사회에 각인시킨 성공 사례다. 공공과 수요자층, 그리고 지역 사회 등 다양한 주체의 연결성을 만들어내 결국 그곳에 사는 사람의 생활이 빛나야 한다. 부동산에 눈이 멀지 않을 때 주거 문제로 고통을 받는 더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고, 이들이 웃을 수 있게 될 때 우리 사회는 한단계 도약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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