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병찬 서예가 · 시인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자신이 살아온 길을 회상하고 성찰해 보려는 시간을 갖고자 하는 것 같다. 필자 역시 팔순이 넘다 보니 80평생의 가족관계며, 44년 동안 봉직해온 교직 생활이며, 63년 전부터 "먹내음 붓길따라" 즐겨온 서예 활동에 대하여 회고하는 시간이 잦아졌다. 마침 제주문화예술재단의 배려와 제주미술협회의 도움으로 서예 활동을 중심으로 한 자서전을 코로나의 위세를 경계하며 쓰게 되었다. 

자서전 자료를 모으면서 곰곰이 떠오르는 것은 내가 걸어온 사실들이 기록으로 남겨졌을 때 가족들에게는 무슨 도움이 될까? 서예를 즐기는 후진들에게는 어떻게 비쳐 질까? 자칫 흉물로써 자리만 메꾼 잡서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아래의 글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

"당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삶의 매뉴얼을 지니고 있기에 사명감을 가지고 기록할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기적이고 축복이다. 자신이 살면서 누렸던 기적적인 순간과 축복받은 순간을 이제 말해야 한다. 오로지 나만이 내 삶을 정확하고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 그 사람의 삶은 오로지 그 사람만의 것이며 그것대로 가치가 있다. 담담한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만의 이야기를 조용하지만 힘 있게 적어 내려가야 한다."고 말한 매일경제신문 현혜수님의 글을 보고 과감하게 덤볐다.

자료를 모아놓고 나의 정서와 흔적을 정리하면서 느낀 것은 "나는 나 자신과의 대화를 펼쳐가고 있구나." 하면서도 후회와 반성의 연속이며, 축복과 환희의 무대가 되고 있었음을 알 것 같았다. 지금 내가 기록하고자 하는 자료들은 세상을 향한 나의 활동 기록물이라 생각하니 이 원고가 나 자신과의 소통으로써 솔직하게 이루어 지고 있는지, 아니면 온통 스스로를 과찬하는 자화자찬의 일색인지, 그 양면에서 부끄러움이 앞섰다. 이 기록물이 과거의 기억을 수단으로 하여 쓰여지는 나의 정체성 형성물이라 볼 때는 이게 남들에게 부담이 안 되는 범위에서 남들과 공유할 수 있는 객관성을 살릴 수 있는 자료가 될까 하는 관점에 깊이를 더하려고 했고, 자료마다 남들과는 다른 독창성과 창의성들을 찾아보는데 더 무게를 두게 되었다.

모아놓은 자료들을 들춰보던 김유정 평론가는 "현병찬의 서예는 한마디로 오래도록 처마 아래서 낙숫물 질 때까지의 수련을 통한 결과다. 예술에 내재된 의미가 수련이라면, 자연히 소암과 해정에게서 예술가의 근성을 배운 것이다. 목표는 있되 언젠가라는 기약만 있는, 그 '기약 없음'의 의미 속에 담긴 가능성의 열정에서 끈기를 배운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라고 정의를 내려줬음에 용기를 얻어서 지나온 삶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더 가질 수 있었다.

자서전을 쓰는 내내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라는 김준엽님 시가  머리에서 맴돌았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겁니다.// 그 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내 마음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놓은/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이 시어가 주는 의미와 같이 하루에선 저녁이요 일년으로 치면 겨울에 접어든 팔순 나이에 주마등처럼 지나온 희노애락의 삶에 대하여 자서전을 통하여 회고하는 과정 속에서 반성과 환희의 시간을 가져본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변화와 지속성으로 이루어진 삶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한평생 걸어온 보람의 발자취들을 회고록이나 회상록이나 자서전으로 솔직하게 서술한 기록물을 신축년 새해 신성한 흰소의 영검에 실어 새로움으로의 여유와 평화, 의지와 성실, 의로움과 충직으로의 염원을 우보만리(牛步萬里) 정신으로 그려보고자 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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