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국의 향기 파도를 넘어서


 3월 17일 일본 오키나와현 구지카와 시민예술극장.꼭 2년 만의 감격이다.지난 98년 2월 창단 후 단원들이 제주페스티벌밴드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대만에서 열린 제11회 아시아·태평양관악제에 참가하기는 했었지만 서귀포시립관악단의 독자적인 이름을 내걸고 해외연주여행을 나서기는 87년 11월 서귀포에 시립예술단이 구성된 이후 처음있는 일이었다.또한 우리 시립관악단은 일본 오키나와현에 있는 구지카와시의 시민예술극장 개관 5주년을 기념하여 국제무대예술교류사업으로 초청된 최초의 연주단체가 되었다.

 필자는 우리를 초청한 구지카와시의 음악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어떻든 일본이라는 곳의 관악수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나 이 기우는 연주회 다음날 ‘박력 있는 연주로 800여명의 관객들을 매료시켰다’는 오키나와 타임즈의 보도를 접하고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사실 고민은 일본 초청 연주이야기가 흘러나올 때부터 시작됐다.충분하지 않은 연주자 구성에서부터 연주 곡목의 선정,책임자로서의 중압감 등.그러나 정작 필자를 괴롭게 만든 것은 출발 직전의 악보 문제였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격이었다.함흥차사였던 악보가 도착하여 연습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시간의 한계를 넘겨버린 상태였고,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악보를 제껴두고 스스로 편곡을 한답시고 음악실 책상 앞에 앉은 필자는 결국 밤을 꼬박 새워버렸다.

 경과야 어찌됐든 우리는 예정된 시간에 일본 땅을 밟아야만 했다.중요한 것은 지금까지가 아니라 앞으로의 문제해결 능력이었다.1명의 연주자가 2∼3명의 역할을 감내해야만 하는 괴로움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공염불처럼 들릴 지 모르겠다.그러나 우리는 해냈다.

 대한민국 유일의 시립관악단이 일본 중학생들도 가지고 있는 악기조차 없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예정된 시간을 훨씬 넘겨가며 리허설을 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불평없이 따라주었던 단원들,즐거운 마음으로 협연자의 연습반주를 맡아주었던 피아니스트,구지카와시의 4개 중학교 80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워크숍 지도자로 참가했던 단원 들에게 모두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또한 우리민요 ‘도라지’를 우리말 가사로 불러준 120명의 일본합창단원들,오키나와민요 ‘바쇼후’를 합창할 때 독창을 맡아준 소프라노와 테너,우리 고장 소프라노 김수정씨와 단원 알토 색소폰의 송민구의 열연에도 고마움을 전한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신념이다.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처럼 시련을 딛고 오뚝이처럼 일어서야만 한다.<양경식·서귀포시립관악단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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