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20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본격적인 선거국면에 접어들자 시민사회단체의 낙천 낙선운동은 후보자와 선거운동 및 선거전망에 관한 보도에 묻혀버렸다.

낙천 낙선운동은 애초 열렬히 지지를 받았다. 이것에서는 87년 여름과 97년 초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에만 관심이 있어 보였던 n세대가 드디어 사회에 개입하는 계기가 마련된 듯도 했다. 이웃 일본 등의 시민사회단체들도 이를 배우고자 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음 추구했던 것과는 멀어 보인다. 운동의 선의는 3김 1이의 노련한 정치행위와 당리당략에 이용만 당했다는 기분이 든다. 자민련은 민주당의 음모론을 들고 나오며 지역감정에 불을 질렀다. 민주당은 동교동계의 입지를 강화했다. 한나라당은 이회창의 친위쿠데타 계기로 삼았다. 이에 낙천자 중심의 민국당이 급조되었다. YS는 상한가를 치기 시작했다. 95년 지자제 선거를 통해 DJ와 JP가 재생한 것처럼 이번 총선을 통해 YS가 부활할 것 같기도 하다. 노회한 3김은 정치구단이라 할 만하다. 1이는 역시 대쪽이었다. 하지만 대나무는 속이 비었다. 공천파동으로 인품 능력 자질을 의심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정세를 보면 한나라당이 제1당이 될 것도 같다. 속 빈 대나무가 죽창에는 가장 좋은 재료이던가?

결국 새 정치와 새 세대의 등장은 공염불에 그치고 마는 것일까? 후보자와 선거운동을 보아도 실망만 가득하게 된다. 잔뜩 기대를 걸었던 낙천 낙선운동도 지역주의 앞에선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는 듯하다. 차라리 신경을 끄고 선거 당일 봄나들이나 할까 싶다.

그러나 한 마음 돌이켜보면 그게 아닌데 싶기도 하다. 우리가 한국정치에서 최선이라고 생각하면서 선거에 참여한 게 과연 몇 번이나 될까? 최선이 아니라도 차선은 택해야 된다는 얘기를 계속 들어온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하지만 이제는 그 차선도 탐탁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어쩌면 좋을까?

바둑 운동경기 같은 게임에서는 본인이 잘해서보다 상대방의 악수나 실수 때문에 승리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정치에서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지지도 이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에만 해도 민주당의 옷로비 사건, 한나라당의 공천파동 등의 자충수가 상대방에 대한 지지로 변할 수 있었다. 정책에 의해 지지를 긍정적으로 끌어들이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잘못으로 반사이익을 얻는 부정적인 전략만이 가능한 것 같아 씁쓸하다.

그렇지만 어떡하겠는가? 최악의 경우만은 피해야 할 게 아닌가? 차선마저 없다고 모든 걸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을까? 차선도 되지 않으면 최악만은 면해야 하지 않을까?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 있듯이, 최악 대신 그보다는 덜 나쁜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마지막 희망이 아닐까?

사실 낙천 낙선운동도 바람직한 후보자를 뽑자는 긍정적인 접근방식은 아니다. 나쁜 정치인은 피하자는 차악의 접근법이다. 뿐만 아니라 유권자가 과거처럼 수동적이지만은 않음으로써 지금까지의 정치지형을 흔들기 시작했다. 시민사회의 이러한 가능성은 늦으나마 조금씩 봄은 다가온다는 걸 느끼게 한다. 한겨울에 시작한 낙천 낙선운동도 최소한 이 정도의 결실은 있어야 조금이나마 가벼운 마음으로 봄나들이를 할 수 있지 않을까?<이상철·제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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