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추락하고 있다.누구도 이야기하기를 꺼리지만,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스며 있는 그 불안감의 실체를 드러내야 할 때가 되었다.이러한 논의는 사실,관광자유도시라는 막연한 개념을 제시하는 데 그친 ‘제4차 국토종합계획안’이 공개된 작년 7월에 제기되었어야 했다.하지만 제주도의 미래에 대한 우울한 전망을 담고 있는 ‘국제자유도시 2차 보고서’가 제출된 지금부터라도,우리는 이 어려운 논의를 시작하여야 한다.

하나

 제주도 추락의 근본적 원인은,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시대적 변화,세계적 경쟁의 흐름과 그 흐름을 우리가 놓치고 있다는 점에 있다.가장 먼저 문제삼아야 할 것은,우리나라 전체에서 차지하고 있는 제주도의 정책적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 제주도는 우리나라의 전체 국익적 관점에서 볼 때,아직 취약한 한국 관광산업의 거점 또는 한국 유일의 감귤산업단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외화획득 또는 앞으로 늘어날 국내수요 충족을 위해서,중앙정부는 전체 국익적 차원에서 제주도를 행정적,재정적으로 지원·개발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한국 경제가 전면적으로 대외 개방되고,특히 관광산업 거점개발의 정치적·경제적 필요성이 약화되면서,제주개발지원의 전체 국익적 논거는 취약해지고 말았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중앙정부의 막대한 재정지원을 통한 제주개발을 기대하고 있다.그 기대가 잘못되었다고 할 필요까지야 없겠지만,그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기대이다.국내적 차원에서도 이미 시장과 경쟁이라는 정책적 지향이 확립되어 있는 이런 냉혹한 시기에 그런 기대를 부풀리는 것은 일종의 기만이다.



 오히려 우리 의식상 남아 있을지 모르는 정부지원 기대라는 ‘과거의 덫’에서 벗어나,우리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냉정하고 또 치밀하게 찾아보는 것이 현실적인 방향설정이다.지금 매우 어려운 형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어느 정도 기반을 갖춘 제주 관광산업과 감귤산업을 배경으로 새로운 무엇을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지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식·정보산업이라는 새로운 산업의 물결에서 우리가 배제되고 있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이다.전근대적 부문,근대적 부문,초근대적 부문이 혼재하는 경우,그들간의 부(富) 나아가 권력의 분배는 매우 불균형적으로 되어,초근대적 부문,말하자면 ‘제3의 물결’ 쪽으로 모든 것이 편중될 것이라는 미래학자들의 지적을 잊어서는 안된다.

 생명공학산업 중심의 ‘생명의 섬’,정보기술산업 중심의 ‘정보의 섬’,또는 문화적 컨텐츠산업 중심의 가령 ‘영상의 섬’ 등과 같은,더욱 적극적인 제주발전의 개념을 제시할 수 없다면,우리는 새로운 부와 권력의 흐름에 동참할 기회를 놓치고 말 것이다.제주의 생물다양성이나 세계 통신망상의 지리적 이점 등으로 말미암아,희미하나마 지식·정보산업의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관계전문가들을 주목하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상을 버리는 일이다.12억원인가 하는 막대한 용역비를 들이면서 확인할 필요까지는 없었지만,‘국제자유도시 2차 보고서’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국제자유도시는 비현실적 목표이며 제주도의 미래는 우리의 역량으로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틈새시장’의 발견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보고서는 그 틈새시장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비상(飛上)의 방향은 너무나 분명하다.제주의 미래를 담보할 틈새시장을 찾는 우리 스스로의 실천적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우선 당장은 국제자유도시라는 그 신비화된 개념을 포기하고,용역단으로 하여금 용역비에 걸맞게 구체적인 틈새시장들을 더욱 과학적으로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일이 시급하다.<고호성·제주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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