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요구에 칼로써 대응하면
우리는 죽음으로써 대응한다"

사진은 제주항일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제주도 해녀 투쟁의 사실'표지와 본문 중 '해녀의 노래'
사진은 제주항일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제주도 해녀 투쟁의 사실'표지와 본문 중 '해녀의 노래'

 

올해는 제주해녀들이 외친 '대한독립만세'가 섬을 뒤덮은 지 90주년 되는 해다. 정주년의 의미를 넘어 제주해녀항일운동의 가치를 생각할 때 그 어느때보다 진중한 관심이 필요한 해이기도 하다.

광복 50주년이던 지난 1995년 해녀항일운동기념사업회가 만들어졌고, 이후 관련 인물들이 독립유공자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2019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대한독립만세와 주권 수호를 외쳤던 전국 최대 규모의 여성운동인 제주해녀항일운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다.

앞서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제73주년 광복절 경축식 축사를 통해 제주해녀 항일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고 "정당한 평가와 합당한 예우를 받게 할 것"이라고 언급한 일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19316월부터 19321월까지 제주시 구좌읍·성산읍·우도면 일대에서 펼쳐진 '제주 해녀 항일항쟁'은 연인원 17000여명이 참여, 무려 238회의 집회 및 시위를 전개한 우리나라 최대 어민운동이자 전국 최대 규모의 여성운동이다.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이 크지 않았던 때였다는 점에서 '여성중심의 첫 생존권 투쟁'으로도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제주도가 가지고 있는 공식 자료는 제주해녀항일투쟁실록(1995)이 유일했지만 올해 제주해녀박물관이 제주항일기념관이 소장한 제주도 해녀 투쟁의 사실을 국역해 8월 특별전을 통해 공개하기로 하는 등 사료적 증거가 두터워진다.

구좌읍 하도리 출신 고 현상호씨가 1950년 집필한 이 책은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첫 1차 사료로 인정받는다. 항일운동가이자 사회주의자, 사상가의 눈으로 제주인의 항쟁과 일제의 수탈정책, 해녀투쟁의 원인과 발단, 제주해녀 항일운동의 의의를 해석했는가 하면 실형 선고와 관계없이 제주해녀항일운동과 관련한 검거자 명단이 실려 있는 등 그동안 답보 상태에 있던 해녀항일운동 관련 독립유공자 선정 작업 등에 긍정적 영향이 기대되고 있다.

제민일보는 이에 더해 당시 해녀들이 야학으로 민족정신 등을 배웠던 혁우동맹 산하 하도강습소(현 하도초등학교)1932112일 제주 동부 지역 해녀들이 총집결했던 속칭 '연두막 동산' 해녀항쟁 시위지(해녀항일운동기념탑), 대규모 집회와 더불어 "우리들의 요구에 칼로써 대응하면 우리는 죽음으로써 대응한다"라 외쳤던 세화장터, 주도자 등이 강제 연행된 후 석방을 요구하며 연대했던 구좌파출소 등을 중심으로 해녀항일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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