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권용 제주특별자치도 해녀문화유산과 학예연구사

올해는 제주해녀항일운동 9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금으로부터 90년 전 제주해녀들의 삶은 고단하였다. 19세기 말부터 제주로 진출한 서일본 출신의 잠수기 업자들은 제주 연안의 해산물을 수탈하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 이로 인해 제주의 수산 자원은 황폐화되었고 제주해녀들은 돈벌이를 위해 뭍으로 출향물질을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출향물질을 나간 제주도 해녀들의 삶도 비참하긴 마찬가지였다. 객주들은 해녀들의 채취량과 가격을 속였으며 일본 상인들은 헐값으로 사들여 해조회사에 넘기는 등 해녀들이 채취한 해조류는 제 가격을 받지 못하고, 중간 상인들이 가로채 버린 것이다.  

이에 출향해녀들의 힘든 생활상을 접한 제주도의 유지들은 출향해녀를 보호하고자 1920년 제주해녀어업조합을 창립하였다. 하지만 해녀들의 권익을 보호해야 할 해녀조합은 일본인 제주도사가 조합장을 겸임하던 1920년대 후반부터 어용화되기 시작하였다. 이 어용조합은 일본인 상인과 결탁하여 자유판매를 금지하고 낮은 지정가격을 설정하는 등 해녀들을 수탈하였다.  

이에 해녀들은 1932년 1월 7일 감태재, 생복 판매의 정상적 판매와 해녀조합의 부당함을 철폐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일본 당국은 무성의로 대처하였다. 1932년 1월 12일 세화 장날 제주도사 겸 제주도해녀어업조합장인 다구치 데이키(田口禎熹)가 구좌면을 통과한다는 소식에 하도, 세화, 종달, 연평, 오조, 시흥리 등의 해녀들은 호미와 비창을 휘두르며 세화장으로 몰려들었고 '우리들의 요구에 칼로써 대응하면 우리는 죽음으로써 대응한다'고 외치며 지정판매 반대, 조합비 면제 등 8개 조항을 요구하였고 결국 다구치 도사는 해녀들의 시위에 굴복하였다.

90년이 지난 올해 1월 12일도 여느 때처럼 찬바람이 몰아쳤다. 90년 전 엄동설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죽기를 각오한 해녀들의 결의를 생각하면 이 추위는 아무것도 아닌지 모른다. 불의와 부당함에 정정당당하게 대항한 제주해녀들의 기개를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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