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무숙 제주여성가족연구원장

오늘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114년 전인 1908년 미국 뉴욕에서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일하던 여성 섬유노동자 15천 명이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인상,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선 것이 여성의 날 지정의 배경이 되었다. 정작 3월 8일은 1917년 러시아의 여성노동자들이 폭압적인 제정타도를 외치며 페트로그라드 거리로 쏟아져 나온 날이라고 한다. 1975년 유엔이 기념일로 지정한 이후 세계 각국에서 이날을 기념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2018년부터 법정기념일로 지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유엔위민(UN WOMEN)은 3·8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한 올해의 슬로건을 "지속가능한 내일을 위한 오늘의 성평등"(Gender Equality today for a Sustainable Tomorrow)으로 명명하고 각종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여성과 여아는 세계 빈곤층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고 기후변화와 전쟁 등 재난 시 더 큰 영향을 받는 취약한 집단이다. 반면 이들은 자연과 자원, 공동체를 최전선에서 지키는 주체로서 역사적인 변화를 이끌어온 행동가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성과 소녀들이 내일을 위한 의사결정 과정에 더 큰 목소리를 내도록 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즉, '모두를 위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성평등을 증진하는 것'은 모두의 인권과 사회정의를 지키는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전 지구적 과제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국내외 상황은 이러한 비전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3월 8일을 평화와 발전을 기리는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고 있는 러시아가 자국안보를 내세워 이웃국가에 대한 공격을 오늘도 멈추지 않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전쟁에 차출된 군인들의 희생 뿐 아니라 여성과 여아들의 인권유린이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0년에 여성과 평화와 안보에 대한 결의안(1325호)을 만장일치로 의결한 바 있다. 이 결의안은 분쟁 상황에서 성폭력 등의 젠더폭력으로부터의 여성보호뿐 아니라 분쟁 예방, 평화 유지나 정착을 위한 조직, 정책, 교육에 여성의 주도적 참여를 보장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각국은 이행계획을 제출하도록 하였지만 이러한 노력은 빛을 바랬고, 지속가능한 미래는 멀리 달아나는 중이다. 

전 세계에서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수십년간 이룩한 성평등 지표 또한 하락하고 있다. 많은 국가에서 시장이 위축되면서 기존에도 열악한 지위에 있던 여성들은 경력단절과 소득감소, 가정폭력 증가 등 사회경제적 위험에 처해있다. 한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여성들의 성취가 가시화되면서 그를 위해 치러진 오랜 투쟁과 희생은 잊혀지고 차별적 사회구조나 가부장적 문화가 이제는 모두 없어진 것처럼 오도되고 있다. 특히 반성폭력에 대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혐오 담론이 유포되고 정쟁화되면서 젠더문제는 점점 납작해지고 있다. 가정과 사회유지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돌봄노동은 찬양만 받을 뿐 그 가치는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고, 줄어들지 않고 있는 성별 임금격차의 현실 또한 외면당하고 있다.

많은 국가에서 3월 8일 오늘을 기념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젠더문제가 여전히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임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완전하고 평등한 참여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더 큰 파이를 만들어 같이 나누기 위함이다. 그러나 구성원 모두가 오늘 함께 노력하지 않는다면 지속가능한 내일은 결코 우리에게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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