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이 제주에서 자생하는 왕벚나무 군락지를 관찰하고 있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이 제주에서 자생하는 왕벚나무 군락지를 관찰하고 있다.
김찬수 소장
김찬수 소장

'왕벚나무'는 우리 이름이다. 그런데 국립수목원은 자생식물목록에서 이를 지우고 새롭게 '제주왕벚나무'라는 생뚱맞은 이름을 지어 붙여놨다. 그리고 '왕벚나무'라는 이름은 재배식물목록에 갖다 붙였다. 자생식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왕벚나무'라는 이름은 1949년 '문교연구총서 제2집 우리나라 식물명감'이라는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 당시에는 '왕벗나무'라고 표기한 것을 후에 '왕벚나무'라 했다. 이 책은 문교부가 편찬했다. 여기엔 분명하게 왕벚나무는 제주도가 '원산지'이고 재배하기도 한다라고 기재했다. 당시는 한국전쟁 이전으로 왕벚나무를 지금처럼 흔히 볼 수 있을 만큼 많이 심어지기 전이다.

'왕벚나무'라는 이름은 광복 이후 우리나라 과학자가 한라산에 자생하고 있는 나무를 기준으로 붙인 첫 국명이다. 이 분은 후에 중앙과학관장을 역임한 박만규라는 식물학자로 1965년 한국식물학회지 8권 3호에 '한국 왕벚나무의 조사연구사'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나무의 이름은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에 사꾸라, 1942년 조선삼림식물도설에 사구라나무, 1965년 한국동식물도감 제5권 식물편에 큰꽃벗나무, 1966년 한국수목도감에 제주벗나무, 1982년 한국농식물자원명감에 큰벚나무와 참벚나무로 기재한 바 있다. 그러니 광복 이후 우리나라 학자가 정당하게 공표한 이름 중 첫 번째는 '왕벚나무'가 된다. 이 이름은 '선취권'이라는 면에서도 가장 합당하다. 

이 이름은 1964년 1월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을 지정할 당시에도 '제156호 신례리 왕벚나무 자생지', '제159호 봉개동 왕벚나무 자생지'라고 하여 그대로 사용했다. 1968년 문화공보부가 낸 천연보호구역학술조사보고서에도 왕벚나무로 표기했고, 1973년 제주도가 낸 제주도 문화재 및 유적종합조사보고서에도 그대로 사용했다. 이들은 모두 한라산에 자생하고 있는 나무를 기준으로 한 것이지 재배 중인 나무를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국립수목원이 2020년에 출판한 '국가표준식물목록(자생식물편)'에 이 이름을 삭제한 것이다. 국립수목원은 이 목록에 왕벚나무가 기록되어 있다고 항변하지만 그건 그들이 멋대로 지은 '제주왕벚나무'다. 

왕벚나무를 재배식물이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그 이유로 이 나무는 일본에서 도입한 '소메이요시노'라는 것이다. 그리고 디엔에이(DNA) 분석결과 제주도 자생의 왕벚나무와 일본 벚꽃은 기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 왕벚나무는 일본 원산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언제, 누가 어떻게 교배했는지 그 양친은 어느 것이며, 그 형제는 어디에 있는지 아무런 기록이나 증거가 없다. 자연적으로 교잡이 이루어졌을까? 그렇다면 자생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없다. 제주도엔 기원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그 두 가지가 모두 자생한다. 자생했었다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한라산에 가면 볼 수 있는 상태로 잘 자라고 있다. 그런데 왜 일본 것이라고 우기는 것인가.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정부가 지정한 왕벚나무의 천연기념물도 있고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제주도 향토유산도 있다. 왕벚나무의 범주에 속하는 다양한 형태, 유전적 특질들이 산재하는데 지금까지 발견된 것만도 235그루나 된다. 조사를 확대한다면 더 발견될 것이다. 이런 개체 중에 유별난 특성을 보여 재배할 경우 별도의 품종 이름을 붙일 수는 있다. 그래도 그건 '왕벚나무' 중 1 재배 품종이 되는 것이지 별도의 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종을 구분하는 개념이 바뀌었다 해도 기존의 왕벚나무 이름을 뺏어다가 거기에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왕벚나무'는 '소메이요시노'를 번역한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처음 '요시노벚나무'라고 불렀다. 이 나무를 많이 팔기 위해 묘목상이 이런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벚꽃이 유난히 아름다워 마치 벚꽃 명소의 대명사 같은 산 이름 '요시노산'에서 따온 것이다. 이것을 1900년 일본 정부 박물국 천산과의 어느 직원이 도쿄 우에노공원에서 당시까지는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가로수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 나무들이 소메이 지역의 묘목상에서 구입해 식재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소메이요시노'란 이름을 붙여 발표한 게 시초다. 일본 입장에서는 이 나무가 당시까지 이름조차 없는 생소한 외래 수종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왕벚나무를 일본산이라면서 '소메이요시노'로 부르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제주도에 엄연히 자생하고 역사적으로도 정통성 있는 우리 이름 '왕벚나무'를 누가, 무슨 권리로 빼앗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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