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더워지니 못 보던 것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새싹들도 어느새 자라 파릇파릇 새 잎이 푸르러 지기 시작하고, 개미들도 발걸음들이 빨라졌다. 장마가 오기 전, 먹을거리를 열심히 실어나르는 모습들이다. 누군가 떨어뜨렸는지 개미들이 금세 알아차리고 열심히 힘을 모아 빵부스러기를 실어나르고 있다. 쪼그려 앉아 개미들을 구경하노라니 그놈이 그놈인 것 같고, 쏙쏙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자니 한 녀석의 특이한 행동을 발견하게 된다. 그 녀석은 무리에서 벗어나 자꾸 다른 데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 녀석에게만 감지되는 냄새가 있는 건 아닐까 상상하게 된다. 그 녀석이 찾고 있는 것은 뭐지 궁금하기도 하다. 

히로타 아키라의 그림책 「무리」를 읽다보면 장면 마다 모양이 다른 양이나 기린, 개미가 나온다. 그들은 무리의 발걸음에 맞추지 않고 다른 데로 가거나 다른 모양으로 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는 그림책이다. 그런데 걱정되는 게 하나 있다. 남들과 다른 모양이거나 속도이다 보니 자칫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무리 속에서 다른 모양, 다른 성격, 다른 삶의 양식을 취하는 이들은 대체로 놀림감이 되거나 소외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속하여 함께 살아가는 데는 속도와 양식을 맞춰야 하는 무리가 뒤따른다. 꼭 그렇게 따르며 살아야 할지 의문이 들면서도 소외되기 싫어 따르다 보면 정체성의 혼란과 더불어 자괴감, 자기회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는 "나는 나야"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당당하게 자기 만의 길을 가는 용기가 필요할 수 있다. 자기에게 상처를 주는 이가 스스로라면 얼마나 슬픈 일이겠는가. 하지만 어떤 관계에서는 서로의 걸음 속도나 삶의 양식을 맞춰야 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부부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함민복 시, 「부부」)

이 시를 읽으며 부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남다른 부부애를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함께 하는 부부가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것이다.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는 부분에서 쿵 하고 내려앉는 게 있다.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하는 일 앞에서는 서로의 허리를 굽히거나 몸의 위치를 바꾸거나 하는 일이 생긴다. 힘이 들면 잠시 쉬어가게도 된다. 하지만 아무 소리 없이 '탕'하고 내려놓아 버리면 누군가는 크게 다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럴 때는 미리 신호가 필요하다. "나 힘들다. 조금만 쉬었다 가자"는. 

부부에게 있어 힘들다, 외롭다, 필요하다..., 등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문화권에서는 흔한 일이다. 단순히 문화차이라고 하기엔 많은 불편한 감정과 갈등을 일으킨다는 점에서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어쩌면 문화나 교육의 문제라기 보다는 자기 자신의 마음 상태나 욕구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감수성의 문제가 아닐까? 나를 알고 타인을 이해하는 것,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는 것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소모적인 에너지를 감소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참 솔직하고 아름다운 영화 한 편을 보고 기분 좋은 밤이 된다. 켄트 하루프의 소설을 영화화 한 '밤에 우리의 영혼은'을 보고 나서이다. 노년의 배우, 제인 폰다와 로버트 레드포드를 보는 양념같은 즐거움도 있었다. 

사별한 배우자를 두고 있는 두 남녀, '루이스 워터스'(로버트 레드포드 역)와 '에디'(제인 폰자 역)는 밤을 함께 보내는 친구가 되기로 한다. 물론, 성생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제안한 것은 에디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청혼은 아니고 우리 둘 다 혼자잖아요. 혼자 된지도 너무 오래 됐어요. 난 외로워요. 당신도 그러지 않을까 싶고요. 그래서 밤에 나를 찾아와 함께 자줄 수 있을까 하고, 이야기도 하고..., 섹스 이야기가 아니고 밤을 견뎌 내는 거 누군가와 함께 침대에 누워 나란히 밤을 보내는 거요. 밤이 가장 힘들잖아요..."

평생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만 생각하고 살았던 두 사람은 밤을 함께 보내면서 남들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눈다. 과거의 불륜 경험에 대해, 아이에게 주었던 상처, 가족들에게 느꼈던 무거운 죄책감과 후회 등 자신의 가슴에 꽁꽁 숨겨두었던 말들을 하며 낮과 밤을 보낸다. 그렇게 외로움도 잠시 잊는 듯하다. 하지만 에디는 손주 에이미를 보기 위해 집을 떠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다시 찾아오는 이별인 듯 가슴이 에일만도 한데 루스는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오래 묵혀두었던 꿈인 그림을 그리기 위해 화구를 장만한다.  

에디가 손주 에이미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나서 잠자리에 들려고 할 즈음 걸려온 루스의 전화, 그리고 나누는 대화로 영화는 끝이 난다. 서로의 외로움을 너무나 잘 아는 친구 같다. 대화를 하는 내내 편안한 미소가 번진다. 밤에 그들의 영혼은 더욱 밝아진다. 이런 친구 같은 이웃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서로의 상처를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서로의 필요를 적당히 채워주며 심심하고 무료한 영혼에 가끔은 전등을 달아주는 그런 이웃. 그게 바로 지금, 여기의,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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