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현 문화예술 공간 기획자 ·비상임 논설위원

미술, 음악 문화 예술의 어느 분야에서든 예술은 특별한 누군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예술에는 주어진 정답이 없다고. '누구나'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열린 영역으로써의 예술이 되기 위한 노력은 갈수록 힘을 얻는 듯 해보인다.물론 우리가 일상 속 더 많은 것들을 아름다움으로, 예술로 인지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늘어남은 늘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슈가 되는 미술관 작품들 앞에서 마치 방문 인증 자체가 본 목적이 아닐까 싶도록 촬영에만 열중하는 이들, '포토제닉'한 기획과 마케팅에 치중된 예술 공간에 발을 디딜 때마다 희미해져가는 '예술의 목적과 역할'에 대해 다시 떠올리고 질문을 던지게 된다. 아마 작가의 삶과 작품에 묵묵히 빠져 소화시켜보는 시간보다 비주얼적인 것에만 이끌려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야 마는 나 자신의 모습에서 시작된 질문이지 않을까. 

예술 향유자라 말하면서도 '나는 대체 무엇에 열광하고 있는가' '이렇게 그저 예술을 즐기며 위로 받고 행복해지면 되는 것일까'하고 질문을 품게 된 것이다. 최근 그러한 본질적 사유와 질문에 대해 따뜻하고 은유적이며, 동시에 속 시원한 답을 건네 준 전시를 누릴 수 있었다. 2021년 개관한 제주 포도뮤지엄의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전에서의 경험이다. 이번 전시는 디아스포라와 세상의 모든 마이너리티를 주제로, 다양한 이유로 지리적, 정서적 고향을 벗어나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살아내는 존재들에 주목했다. 언제든 디아스포라 혹은 마이너리티가 될 수 있는 삶, 예측 불허의 삶이므로 결국 우리 모두가 다르지 않음을 알고 어우러져 살아가야함을 모두 다른 국적의 다른 형태의 작품들로 이야기 해준다. 전시 주제와 작품과의 연결성을 좀처럼 찾기 힘든 (그래서 전시관람 후에도 왠지 모를 허무함이 밀려오는) 다수의 현대 미술전과 달리 '이해 가능한, 접근 가능한, 무엇보다 삶의 냄새가 담긴' 작품들을 통해 말이다.

관람객들은 평소 돌아보지 못했던 소외된 이들의 아픔을 예술을 통해 직면하게 되고, 그 직면이 몰랐던 삶을 이해하게 된다. 그 이해는 자연스럽게 이 세상 어딘가를 살아가는 누군가에 대한 연민과 '사랑' 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또 인상 깊은 점은 그 첫 단계인 '직면'에서 관람자들이 어쩌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삶과 사실들 앞에서 최대한 덜 불편하고, 부서지지 않도록 부드럽고 편안하게 '사랑'으로 우리를 이끈다는 점이다. 작품 하나하나 앞에서 '그럼에도 사랑으로'라는 의식이 일관되게 채워졌고, 조금은 더 사랑의 정의가 확장된, 충만한 마음으로 그 전시장 밖을 나왔다. 예술의 진짜 역할과 목적에 대한 질문에 대해 '꼭 그렇게 깊이 사유하고, 본질을 찾고, 이상적 목적을 찾아야만 예술인가' 라고 되묻는다면, 늘 그렇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우리가 예술가와 작품의 이야기에 더 깊이 귀기울이며 세상과 인간에 대해 알아가고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은 타인이나 이 세상을 위한 거창한 것이 아니다. 더 많은 것을 사랑할 수 있게 될수록, 그 무엇보다 '나의 삶'이 더 풍요롭게, 그리고 가치있게 자라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예술의 본래 목적을 찾는 것은 '내 오늘의 행복'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예술을 통해 채워지고 흘러갈 것은 결국 '사랑으로' 라는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던 그들과 우리 사이에서도, 불필요한 미움, 증오, 슬픔들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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