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 전 충남대학교 교수 비상임 논설위원

지역 발전을 위해 창의적인 방안을 추진할 수 있게 하자는 발상이 제주도가 특별자치도 지위를 갖게 된 근거였고, 출범 후 주된 관심사는 소득 증대였다. 지역의 소득 수준이 전국 평균에 비해 정체됐다는 문제의식이 특별자치도 실험의 근거였기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제주는 우리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들의 대응책을 찾아가는데 필요한 실험장(test bed)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기후온난화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범세계적, 국가적 과제인 탄소배출감축이 좋은 예이다. 청정에너지, 전기차 보급을 통해 제주가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간의 성과와 시행착오는 국가 전체적 대응책을 모색하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줄 것이다. 

이제 다른 분야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약 7가구 중 1가구 꼴로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것으로 추계되고 있고 대부분이 개를 키운다고 하니 관련된 문제는 사회적 관심사다. 안타깝게도 제주는 들개 문제를 겪고 있는데 작년 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중산간 지역 들개 개체수가 약 2000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줄어들 문제가 아니다. 들개는 '유기 또는 유실로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산과 들에서 생활하고 번식하는 야생화된 개'인데 이런 경우에 더해 야생에서 번식해 자란 개체수도 늘고 있다 한다. 들개 현상을 개가 야생적 본능으로 도망쳐 나타난 일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전적으로 사람이 만든 문제다. 해결책은 들개 문제를 만든 사람들의 행태에서 찾아야 한다. 개가 너무 흔해 관리되지 않거나 버려지는 일을 막는 것이다. 

독일, 영국,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등 외국의 관련 정책을 타산지석 삼아 제주에서 강아지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상업적인 목적으로 강아지를 번식시켜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꼭 애완견을 원한다면 주위 애견 가정에서 분양받도록 하면 된다. 우리도 견주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등록제가 시행되고 있다. 현행 등록 제도를 더 촘촘히 강화해 분양 관련 정보를 수집하면 상업적 목적으로 분양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보리밥이 주식이었고 고기는 제사나 명절 때 한 번씩 맛보던 시절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는 개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개는 집을 지키거나 식용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때에는 자식을 훈육한다며 '개 패듯' 때려도, 이웃이 뭐라 해도, 남의 일 참견 말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이제는 경찰이 출동해 잡아간다. 자기 집 아이든 남의 집 아이든 폭력으로부터 보호돼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애완견과 관련해 비슷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다이소'에서 일회용품을 사듯 쉽게 충동적으로 강아지를 살 수 있는 세태가 유기견이나 학대 사례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안정되게 관리할 처지가 아니 사람이 충동적으로 강아지를 입양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유기나 학대를 막는 확실한 방안이다. 상업적 판매가 금지돼 강아지가 귀해지면 유기견 문제는 자연히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관련 보호 시설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개를 키울 수 없게 된 견주들의 애완견에게 새로운 견주를 찾아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 될 것이다. 

애완동물을 인도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존중의 발현이다. 자연 환경을 잘 보존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제주특별자치도가 물질적 풍요뿐만 아니라 보다 인도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에도 나라 전체에 시범을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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