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연 비상임 논설위원·브리즈 아트페어 디렉터

지난 달 제주 방문 때 탐라 아트페어에 다녀왔다. 올해 처음 열리는 모양이었다. 제주에 내가 아는 아트페어만 3개가 됐다. 지역마다 우후죽순 생겨나더니 전국에 100여개의 아트페어가 있다고 한다. 미술시장이 커지고 미술 투자가 유망하다, MZ세대들이 그림을 산다는 뉴스 때문일까. 최근 2년 정도 서울과 대구, 부산에서 벌어진 이례적인 현상인데 왜 지역마다 유행처럼 아트페어가 생기는 것일까.

확실히 지역의 예술가는 더 힘들다. 대부분의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전시를 하거나 컬렉터 또는 동료 예술가들과 교류하기 위해 서울에 자주 드나들어야 한다. 시간과 비용 부담, 그리고 물리적 거리에서 오는 심리적 부담은 작가를 고립시키고 작업의 지속성을 위협한다. 그렇다고 서울로 이주를 하자니 고정 수입도 없이 주거 공간과 작업 공간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작업을 봐주는 관람객, 작업을 사주는 컬렉터가 없으면 예술가는 지칠 수밖에 없다. 지역예술가를 위한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지역의 아트페어는 당연히 지역의 예술가를 위해서 만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지역의 예술가에게 정말 도움이 될까. 어떤 지자체들은 아트페어 예산으로 1억도 쓰지 않는다. 소규모 아트페어라도 공간을 마련하고 작품을 준비하고 홍보를 하고 현장 운영까지 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그러니 정작 중요한 작품 판매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몇 명의 작가가 참여했고 시민을 위해 이벤트를 열었다는 것만이 보도자료로 남게 된다. 아트페어는  팔고 사는 사람이 있어야 성립 된다. 

12년 동안 미술계에서 일하며 아홉 번의 아트페어를 개최했다. 미술시장의 붐을 타고 최근 2년 동안의 성과가 눈에 띄게 좋았던 게 사실이다. 2021년과 2022년에 서울의 예술에 전당에서 열린 '브리즈 아트페어'에서는 이전에 비해 판매가 2배 정도 늘어나 각각 300점 정도의 작품이 판매됐다. 2012년에 처음 아트페어를 열었을 때 15점이 팔린 것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좋아하기엔 이르다. 벌써 미술시장의 거품이 빠지고 있다는 소식들이 들려온다. 

서울에서도 작품 판매는 어렵다. 지역을 불문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미술 작품을 사지 않는다. 국내 미술시장은 아직도 매우 작다. 작품을 사기 위해서는 돈도 있어야겠지만 평소에 전시회도 다니고 관심 작가를 기억하고 작품을 골라보는 연습도 필요하다. 세탁기나 냉장고를 살 때도 여러 브랜드와 모델을 조사하고 비교하며 살피는데 작품 구입을 단번에 하기는 어렵다. 개인의 비용과 시간과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을 사는 일에 대한 사회의 긍정적 수긍이 필요하다.  지역의 아트페어가 지역의 작가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라며 제안한다. 작품을 한 점 사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먼저다. 담당 공무원부터, 관공서부터 지역 작가의 작품을 사야 한다. 

지역의 기업들도 설득해야 한다. 법인이 1000만원 이하 작품을 구입할 경우 손금으로 인정된다. 100만원까지는 작품 선물도 문화접대비로 비용처리가 가능하다. 시민들에게는 생애 첫 작품 구입시 작품 구입비의 50%를 보조해 주면 어떨까. 고향사랑 기부제 답례품에 지역 아트페어 상품권을 추가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작품을 즐기고 구입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급자만 있고 구매자가 없으면 시장이 망하지만, 구매자가 있으면 시장은 저절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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