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귀1리 조간대는 듬북개에서 군냉이에 이르기까지 길이가 약 2km 가량 되며 여지형물이 특히 발달돼 있는 곳이다.


 제주 바다는 햇빛이 비치는 각도 때문에 계절마다 색깔이 다르다.겨울의 짙은 남색에서 봄철로 접어들면 차츰 파란색을,또 여름에는 초록빛 바다가 되기까지 철마다 또다른 풍광을 연출한다.

 애월읍 하귀1리 조간대는 제주시를 벗어나 처음 마주치는 곳이다.

 이 조간대는 제주시와 북제주군의 경계가 되는 조부천 하류의 듬북개에서부터 이 마을 포구인 군냉이에 이르기까지 길이가 약 2㎞가량되며 그 폭도 평균 200m가량된다.

 조간대 범위가 비교적 커 광활하게 느껴지는 데다 썰물때면 마치 섬을 연상케하는 큼지막한 여 지형물이 많다.대표적인 것으로는 동녘섬여·서녘섬여·안볼락여·밖볼락여·가린여·검은여·썩은여·진여·번들여·종지여 등을 꼽을수 있다.

 이들 여 지형물은 썰물때면 뭍과 연결되며 가마우지 등 철새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또 이 일대는 시린물 등 크고 작은 용천수가 많고 어로문화 시설물인 원담이 비교적 잘 보전돼 있다.통시원·무근원·가린여원·멜싸진원·새개원·검은여원 등은 청둥오리들의 먹이터로 자리잡아 왔다.밀물에 끌려 들어왔다 썰물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고기들은 청둥오리나 괭이갈매기의 좋은 먹이감이 된다.

 이가운데 청둥오리는 겨울철새로서 집오리의 원종.주로 해안가나 연못·개울 등에 살며 근래들어 점차 텃새가 되고 있는 게 특징이다.

 더욱이 이 일대는 광령저수지 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조부천을 비롯 파군봉을 끼고 마을중심을 흐르는 하천 등과 만나는 곳이어서 패류와 식물이 다양하게 분포한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의 생태조사 결과 고둥류만 하더라도 밤고둥·구멍 밤고둥·팽이고둥·개울타리 고둥(이상 밤고둥과),눈알고둥·보라배꼽 톱니고둥(이상 소라과),갈고둥·큰입술 갈고둥(이상 갈고둥과),큰총알고둥(큰총알 고둥과)·큰뱀고둥(뱀고둥과)·갯고둥(갯소둥과),맵사리·두드럭고둥·대수리(이상 뿔소라과),타래고둥(물레고둥과) 등 그 수를 헤아릴수 없을 만큼 갖가지다.

 또 식물로는 나문재·지채·갯잔디·천일사초 등이 눈에 들어온다.제주환경운동연합측은 이들 식물들이 오염된 하수를 자정시켜 주는 역할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이 일대는 사방이 탁트여서 한라산 북쪽 기슭은 물론 제주시와 애월읍 해안가가 한눈에 들어온다.맑은 날이면 서쪽으로는 멀리 한림앞바다가,동쪽으로는 조천앞바다가 시야에 잡힌다.

 이 때문에 이 망을 포구인 군냉이는 흔히 군항(軍港)이라고도 한다.고려때 삼별초의 김통정 장군이 항파두리에다 성을 짓고 군냉이를 군항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다.

 김통정은 또 주변의 큼지막한 여 지형물을 군선으로 위장해 려몽(麗蒙)연합군에 대항했다.결국 군냉이는 항파두리로 통하는 길목인 셈이다.

 도내 여느 해안가가 그러하듯 이 일대도 갯녹음 현상이 나타나 어민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갯녹음이란 백화(白化)현상이라고도 하며 바닷가 암반이 산호초의 일종인 무절 석회조류가 뒤덮여 흰색이나 분홍색을 띠는 것을 말한다.이 현상이 진행되면 해조류 포자의 부착이나 성장의 장애를 받으며 이로인해 먹이사슬의 단절로 각종 생태계 구성 생물들이 극히 빈약해지고 생산력이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갯녹음이 어민들에게 백색공포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하귀1리와 하귀2리의 경계가 되는 병풍내는 하류지경의 기암괴석이 마치 병풍처럼 펼쳐져 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다.이곳 사람들은 제주말로 ‘펭풍내’라고 부르고 있다.

 하귀1리와 2리를 잇는 다리(미수교)밑에는 용천수가 있어 인근 1만평방m가량의 미나리밭에 물을 대고 있다.이 용천수를 끼고 그 옆에 있는 커다란 물 웅덩이가 병풍내의 중심이다.장마철이면 주변에 병풍처럼 생긴 암석에서 떨어지는 물이 마치 폭포를 연상케 한다.

 이곳에서 딸과 함께 미나리를 씻고있던 이기술 할머니(72·하귀2리)는 “옛날에는 병풍내에 퍼런 물이 철렁철렁 했다”고 말했다.그는 “여름이면 동네 어른들이 이곳에서 목욕을 했고 장어 등 고기도 많았다”며 “병풍내 물을 이용해 인근 작지물 일대에서 논농사를 짓기도 했다”고 추억을 더듬었다.

 병풍내와 바다가 만나는 곳에는 천일사초·갯잔디 군락이 있고 해조류·어패류 등의 먹이감을 찾아 가마우지·청둥오리·백로 등의 철새가 날아든다.

 그러나 농약 과다사용과 함께 생활하수가 계속 유입됨에 따라 수질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마침 인근에서 낚시를 하던 김안홍씨(61·하귀2리)는 “10년전만 하더라도 병풍내에서 은어와 장어·참게 등이 잡혔지만 지금은 씨가 마른 상태”라고 아쉬워 했다.‘뭘 좀 잡았느냐’는 물음에 “세월을 낚았다”는 그는 “근래들어서는 담수와 하류가 교차하는 병풍내 하류 지경에서 숭어와 농어등이 죽은 채 떠있는 것을 가끔 보게 된다”며 “아마 먹이감을 잃은 저 새들도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좌승훈 기자·사진=조성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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