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영 비상임 논설위원·법무법인 결 구성원 변호사

세간에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가 인기이다. 학교폭력, 소위 '학폭'을 당한 주인공이 이를 알리며 도움을 청하지만, 돈 많고 힘 있는 부모를 둔 자녀들이 가해 학생이기에 주인공의 외침은 철저히 외면된다. 

자살까지 결심했던 주인공이 자퇴 후 복수를 꿈꾸며 성인이 되고, 처벌은커녕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은 채 성인이 된 가해 학생들 앞에 나타나 그들을 처절하게 응징한다는 내용이다. 각종 학교폭력에 노출돼 위기를 겪고 있는 피해 학생들을 학교와 사회가 잘 보살피고 지키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가해 학생들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제대로 그 대가를 치르지 않아 개인이 이를 응징해야 하는 사회의 부조리를 비꼬고 있는 듯하다. 

이런 화제의 드라마로 대중들이 새삼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을 때, 유명 야구선수인 추신수는 학교폭력 논란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못한 후배 선수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표명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추신수는 그 후배 선수가 우수한 기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폭력 논란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제대회에 나가지 못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지적했으나 이는 학교폭력을 심각하지 않게 생각하고 피해자의 고통과 피해를 간과한 것으로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소년보호사건 재판이 열리는 날이면 제주지방법원 곳곳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행위자 학생에 그 부모들과 친구들까지 다 몰리는 날이면 법원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새통을 이룬다. 그 행위도 절도와 폭행에서 성범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소년법에 따른 소년보호사건은 감호위탁이나 수강명령, 사회봉사명령, 보호관찰, 소년원 송치에 그치며 달리 범죄 전력이 남지도 않는다. 

소년보호사건 중 상당수는 학교폭력 사건이다. 학교폭력 사건에 대해 학교폭력위원회 등을 통해 학교 차원의 징계가 이뤄지기도 하지만 별도로 형사 고소 등으로 수사가 이뤄지는 사건 중에서 검찰이나 법원의 판단에 의해 소년보호사건으로 재판이 진행되면 소년보호처분이 내려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학교폭력이 있었지만 행태와 정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된다. 특히 남녀 공학이 많아지고 청소년 시절부터 이성교제를 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성폭력 관련 사건도 많이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해지고 심각해져가는 학교폭력 사건에 대해 소년법으로는 그 처벌의 강도가 너무 낮고 교화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형사 미성년 연령을 낮추거나 소년법을 폐지하는 등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가해학생들에 대한 처벌 강화와 옳바른 길로 선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학교와 사회가 학교폭력에 노출된 학생들이 없는지 살피고 학교폭력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어디선가 고통을 겪을 피해학생들의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 주는 것이 급선무다. 

어느 유명 유튜버는 한 티비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이 학교폭력의 피해자였음을 밝히며,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학생들에게 결코 본인들의 잘못이 아니니 스스로 자책하지 말라고 다독여 주기도 했다. 지금은 추신수처럼 가해 학생을 옹호하기보다, 더 글로리의 주인공같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자퇴를 하거나 험난한 삶을 살아가는 피해학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들이 내민 손길을 따스하게 잡아줘야 할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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