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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제주목관아 주요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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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01-19 (일) 21:02:03 | 승인 2003-01-19 (일) 21:02:03 | 최종수정 (일)
◈연희각
목사가 집무를 보던 곳. 상아(上衙)의 동헌(東軒), 목사의 정아(正衙) 등으로 불린다. 이원조 목사의 「연희각기」에 의하면 “연희각은 예전에 기문이 없어서 건치 연월일을 상세히 알 수 없다. 현판도 누가 명명하고, 누가 쓴 것이지 알지 못하겠다. 건물은 겹처마에 깊숙한 지붕으로 좌대 위에 높게 지어져 있다. 그 이름을 연희라고 한 것은 외신(外臣)이 충성을 다하고자 하는 정성을 표현한 것이다”고 하였다. 연희각은 1884년 홍 규 목사가 중수했으나 1924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헐렸다. 건물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 가구(架構)는 2고주 5량구조, 공포는 무출목 이익공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돼 있다. 면적 136.63㎡.

◈홍화각
절제사가 사무를 보던 곳이다. 1435년 세종때 최해산 안무사가 창건한 뒤 1648년 인조 26년에 김여수 목사가 중수했다. 1713년 숙종 39년에 방어영으로 승격돼 별도의 정아를 설치함에 따라 홍화각은 영리청이 됐다. 1772년 영조 48년 양세현 방어사가 중수, 1829년 순조 29년 이행교 방어사가 재건했다. 탐라고각이라 불렸다. 기문으로 고득종기, 김진용중수기, 이원조중수기 등이 전한다. 1940년 일제에 의해 헐리었다. 고득종이 쓴 ‘弘化閣’이란 편액과 ‘홍화각기’가 새겨진 현판이 삼성사에 보관돼 있으면 복원 현판은 이를 탁본해 새긴 것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 가구 2고주 7량구조, 공포 외1출 목 이익공 겹처마에 팔작지붕. 면적 155.82㎡.

◈우연당
우연당은 1526년 중종 21년에 이수동 목사가 성 안에 우물이 없으면 적이 침입해 성을 포위하거나 화재 발생 때 구급하기 어렵다 하여 못을 파고 물을 가두어 연꽃을 심은 뒤 그 위에 세웠던 정자다. 그 뒤 양대수 목사가 개구리 울음소리가 시끄럽다 하여 연못을 메웠다가, 1694년 숙종 20년 9월 이익태 목사가 중건했다. 영조때 김정 목사가 다시 정자를 중수하고 못 가운데 석대를 쌓아서 꽃과 대나무를 심고 향의실이라 개명하여 공물을 봉진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정면 5칸, 측면 3칸, 가구는 2고주 5량구조, 공포는 초익공 겹처마에 팔작지붕. 면적 88.98㎡.

◈영주협당
군관들이 근무하던 관청.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예전의 군관청 영·목 소속으로 분리될 때 영군관청이 됐다. 군관의 수는 원래 15인이었으나 효종 초기에 이경억 어사가 조정에 건의해 10인으로 줄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 가구는 1고주 5량구조, 공포는 초익공 겹처마에 팔작지붕. 면적 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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