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미군정은 제주4·3을 심각하게 인식해 직접 개입했으며 정부 수립 후에도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 미국이 제주4·3을 심각하게 인식한 이유는 미국이 동아시아 정책의 하나로 한국을 아시아의 ‘민주주의 시험무대’로 인식한 상태에서 4·3봉기 자체가 소련의 사주에 의해 일어났다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미군정의 이러한 사태인식이 결정적으로 제주도 사태를 악화시켰다”

이러한 주장은 제주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석사논문으로 제출한 허호준씨(한겨레신문 기자)의 ‘제주 4·3의 전개과정과 미군정의 대응전략에 관한 연구-5·10 선거를 중심으로’에서 제기됐다.

제주4·3에 대한 미군 및 미 국무성의 각종 자료와 인터뷰, 그동안 나온 단행본과 논문 등을 심도 있게 연구해 작성한 이 논문은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과 이를 집행한 미군정의 정책,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인식을 바탕으로 제주4·3을 총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고 있다.

허씨는 미국은 동아시아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추진한 5·10 선거의 성공을 위해 제주도에서 유독 강화된 물리력을 동원하는 억압정책을 불사했고, 단독선거 반대를 직접적인 명분으로 내세운 4·3봉기에 대한 미국의 강경 진압으로 제주도민을 대량학살했다는 것이다.

4·3이 발발하고 유엔위원단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다음날인 4월 16일 군정장관 딘 소장이 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에 제주도 사태 진압에 대한 작전 명령을 직접 내렸으며, 제주도 주둔 제59군정중대 사령관 겸 민정장관인 존 맨스필드 중령에게 모든 작전을 통제토록 명령한 사실을 통해 미군의 직접 개입을 입증하고 있다.

허씨는 또 제9연대장 김익렬 중령과 무장대 지도자 김달삼간에 있었던 1948년의 ‘4·28 평화회담’을 당시 미군이 작성한 보고서를 통해 5·10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러내기 위한 미군정의 작전의 일환으로 분석했다. 지금까지 회담 이후 5월 1일의 오라리사건까지는 제주도사태가 잠잠했다고 평가해 왔지만 허씨는 이 보고서를 통해 미군이 주도한 작전이 5월 1일까지 계획되고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특히 정부 수립이후인 1948년 11월께부터 자행된 초토화작전 시기에도 미군정은 연락기를 통한 항공정찰 결과를 제9연대에 제공함으로써 제주도민 학살에 개입했음을 밝히고 있다. 또 군사고문단장인 로버츠 준장이 송요찬 연대장의 작전을 격려하고 이를 높이 알리도록 한 사실 속에서도 미국의 개입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한편 허씨는 논문 작성을 위해 당시 제주도에 주둔했던 고문관들을 미국 현지에서 인터뷰하고 내셔널 아카이브즈에서 직접 자료도 입수했다. 허씨는 또 이 논문에서 미국에서 입수한 초토화작전 시기의 전투상보로 추정되는 일일보고서를 처음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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