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감귤대란으로 농심 탄다

▲ 심각한 감귤처리난을 겪는 가운데 11일 남원읍 한 감귤가공공장에는 감귤이 산더미처럼 쌓인 가운데 주변도로에 차례를 기다리는 감귤차량이 길게 늘어서 있다.<조성익 기자>
감귤 선과장마다 기계소리가 멈췄다. 안덕∼남원∼표선에 이르는 동안 길거리에 버려진 감귤을 보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11일 오전 9시 남원읍 신례리 롯데감귤가공공장 앞. 1t 트럭 150여대가 도로에서 마을 골목길 안쪽까지 1㎞구간에 걸쳐 행렬을 이루고 있다.

표선면 세화1리 한 선과장 인근에는 가공용 수매를 위해 내놓은 수 백개의 마대자루들이 보름씩 방치되면서 썩어가고 있었다. 남원읍에서는 농민들이 나서 감귤비상대책기구까지 구성했다. 농가들은 저장물량 처리 방안이 어떻게 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농가들은 이번 주가 마지막 기회라고 말한다.

△감귤 대란 사태= 오전 11시 10분 감귤 주산지인 남원농협 직영선과장. 멈춰진 선과기 위에는 남원농협 마크가 선명한 포장상자들만이 공허하게 줄지어 있었다.

선과장 직원 김정근씨(38)는 “가락동과 대구 공판장 등에 출하했지만 경락가격이 가공용 수매가에도 못 미쳐 4일째 기계를 멈춘 상태”라며 “곧 출하될 비가림, 잡감류에도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최근 남원지역에서 15㎏ 한 상자에 2000∼2500원에 경락되는 일도 수두룩하다. 상자대·선과료 등 기본경비만 한 상자에 대략 3000원. 한 상자에 500∼1000원씩 손해보는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남원읍 지역 70여개 선과장 가운데 90% 정도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고행일씨(남원읍)는 “정월대보름 마지막 대목을 앞두고 출하가 한창이어야 하지만 매기가 전혀 없는 실정”이라며 “출하가 가능한 날도 고작해야 열흘 남짓인데 저장물량을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농가들은 지금도 13만∼15만t 정도는 남아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1일 최대 출하가 가능한 5000t씩 출하된다고 하더라도 절반 이상은 버리는 것 말고는 처리방법이 없는 셈이다. 최근 1일 감귤출하량은 2000∼3000t 수준이다.

△농촌경제 파탄 우려=감귤가격 폭락사태는 농가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영농자금·농약대금 상환에다 감귤선도금 등이 문제라고 말한다. 이달 말로 상환기일이 도래하지만 도무지 갚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3∼4월에는 농촌지역에 연쇄부도사태가 빚어질 것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정태문(성산읍 신양리)씨는 “기존 부채에다 농약 외상대금, 감귤선도금까지 갚지 못하는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며 “대부분 맞보증을 선 상태여서 올 봄에는 연쇄도산하는 농가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500만원에서 2000만원까지 빌려다 쓴 감귤선도금은 3배까지 출하를 해야하지만 가격폭락으로 이를 채우는 농가들이 많지 않아 원금에다 위약금까지 물어야 하는 실정이다. 현승훈 표선농민회 회장은 “빚 상환을 못하면서 신용한도 초과로 100만원도 못 빌리는 신용불량 농가들이 양산될 것”이라며 “신용보증한도를 높이거나 대출조건을 완화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5만t 수매, 마지막 카드=행정에 대한 농가들의 불신이 깊어만 가고 있다. 일부농가에서는 ‘감귤농정에 대한 휴식년제를 실시하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비상 카드’는 있다고 말한다.

남원읍 감귤비상대책협의회 관계자들은 지난 10일 우근민 제주도지사, 김영훈 제주도의회 의장을 만나 농약·비료값 등 순수 원가를 기준으로 1㎏당 200원씩 5만t을 수매할 것을 요청했다. 농가들은 정부·도, 농·감협의 의지만 있다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양윤경 남원읍 감귤비상대책협의회 회장은 “이마저 거부될 경우 현물로 농약·비료대금을 상환해야 하는 지정에 이르렀다”며 “농민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결국 행동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참담한 심경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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