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전 대통령 도민 탄압명령 드러나

4·3 당시 제주도민들이 최소 1만4000명에서 최대 3만명까지 집단적인 희생을 당하게 된 데는 국가공권력의 공식적인 탄압 명령이 있었던 때문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라”고 지시했으며, 대통령이 지시에 따라 법무부장관, 검찰총장은 즉시 제주를 포함한 전국 검찰에 지시함으로써 제주도민들의 인명피해를 확대시켰다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행정자치부 산하 정부기록보존소에서 새롭게 발견된 1949년 1월21일 국무회의록(제주4·3사건 자료집 4권 17쪽·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국민위원회 발간)에서 확인됐다.

15명의 국무위원이 참가한 이날 국무회의에서 이 회의를 주재한 이승만 대통령은 내무부 장관이 제출한 ‘제주도 특별소탕경찰대 1000명 파견에 관한 건’을 의결한 후 시정일반에 관한 유시(諭示)를 통해 가혹한 탄압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미국 측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동정을 표하나 제주도, 전남사건의 여파를 완전히 발근색원(拔根塞源)하여야 그들의 원조는 적극화할 것이며 지방 토색(討索) 반도 및 절도 등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여 법의 존엄을 표시할 것이 요청된다”고 지시한 것으로 회의록은 기록했다.

이 대통령의 지시는 즉시 법무부장관을 통해 전국 말단 검찰조직에까지 전달됐다.

법무부장관은 1월26일 검찰총장에게 대통령의 유시사항을 전국 검찰에게 하달할 것을 지시(법검비 제439호)했으며, 검찰총장은 다음날인 1월27일 각 고등검찰청 검사장, 지방검찰청 검사장, 지방검찰지청장에게 전달(대검서비 27호)했다.

특히 검찰총장은 1월23일 예하 각 검찰청에 공문(대검비 114호)을 보내 ‘그간 좌익사건의 처리가 지나치게 관대해 도리어 후려(後慮)를 야기하는 사례가 불무(不無)하다’고 질책하고 엄중히 처리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수만명의 인명피해가 단순히 현지에 주둔한 군부대장이나 경찰 등 토벌대만의 책임이 아닌 국가차원에서 적극적이고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탄압한 ‘국가 폭력’임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점에서 ‘국가 책임’ 문제가 제주 4·3을 완전히 해결하는 열쇠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박창욱 4·3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중앙위원은 “이승만 대통령의 국무회의록과 검찰의 자료들은 도민들이 국가폭력에 의해 상당수 희생됐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라며 “‘선 진상규명’을 주장해 온 정부는 이제 국가폭력 사실이 확인된 만큼 제주도민과 4·3 희생자 및 유가족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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