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모든 쓰라린 과거를 잊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대(當代)뿐만 아니라 길이 자손에게까지 이 피묻은 기록을 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으로써 우리의 자손이 그들의 자유를 영원히 지켜나가는 노력의 본보기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3·1 독립만세운동부터 8·15 해방까지 가족의 독립운동 역정을 기록하는 이유를 오기영은 어머니에게 드리는 편지를 통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쓰다가 울고, 울다가 쓰고 한 이 기록을 보며, 나는 읽고 우는 것을 반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란만장한 한 개인의 가족사이지만 그 속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뜨겁게 살았던 평범한 조선인들의 눈물겨운 삶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기영은 일제 강점기에 11살의 나이에 3·1 운동을 겪고 이후 해방될 때까지 네 차례나 철창 신세를 졌다. 아버지와 형, 남동생, 여동생 그리고 여동생의 남편까지 가족 모두가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감옥생활을 반복하는 동안 치과의사였던 아내는 독립운동하는 집안 사람임을 자랑스러워하고 가족들을 뒷바라지하다 영양실조와 임신중독증으로 숨진다.

당시 보기 드문 여의사이면서 가족과 직업, 민족의 문제를 함께 끌어안았던 아내의 삶에 대한 오기영의 기록은 한 가정의 가장이면서 독립운동가였던 필자의 인간적 고뇌를 엿보게 한다. 그래서 책의 첫 머리에 ‘이 피묻은 기록을 순국의 혁명가 선형(先兄)과 이미 추억의 세계로 돌아간 사랑했던 아내에게 울며 바친다’고 했을 것이다.

사회 교사인 나는 아이들에게 일제 강점기와 독립운동사를 얘기할 때마다 무언가 허전하고 빈곤함을 느끼곤 했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빈곤함의 실체를 어렴풋 느낄 수 있었다. 교과서에 나온대로 크게 알려진 역사적 사건만 주입하려 했을 뿐 수많은 평범한 민중들의 삶을 역사적 사실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감동을 주는 것에 미흡했던 것이다.

이 책은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울분과 압제에 항거했던 모습들이 당시 신문기자였던 필자의 생생한 필치로 현장감 있게 살아나 진정한 시대 정신과 역사의식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시대와 민족에 대한 치열함과 자유에 대한 열망, 인생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끼게 한다.

‘아이들에게 이 치열함을, 자유에 대한 열망을 어떻게 전달할까?’ 책 속의 구절들을 소리내어 읊어 본다.<조정순·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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