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4월2일 제주시민회관에서 열린 4·3강연회에서 발생한 ‘프락치 사건’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공안당국의 서슬 퍼런 감시가 민족민주진영을 억압하던 시기. 속칭 ‘프락치’라는 정보원을 조직내부에 침투시켜 운동진영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가 하면 내부정보를 몰래 빼내는 일도 서슴지 않았던 때다.

회자되는 ‘프락치 사건’은 운동진영에 깊숙이 관여하는 A씨가 운영하던 모 신문사 지국에 위장 취업한 김창학씨(가명·당시 35세 가량)가 강연회 도중 초청된 외부 인사를 줄줄이 꿰면서 발생했다.

결국 이를 의심한 활동가들이 김씨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서울 등지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을 저지른 전력으로 운동진영 내부의 ‘수배자’(요주의 인물)였던 사실이 들통난 것.

이와 연관됐던 한 인사는 “당시만 해도 김씨가 신문배달 일뿐만 아니라 단체활동에도 워낙 열심히 해 프락치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면서 “당시 시대상황을 감안하면 이런 일이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오해를 풀기 위해 반드시 제주에 다시 오겠다”며 서울로 떠난 김씨를 그 이후로 본 이는 아무도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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