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대학가는 「레드헌트」로 떠들썩했다. 대학가뿐이던가. 각종 인권영화제에서 상영, 전국적으로 4·3의 참상과 진실을 알리는 데 4·3영상 다큐멘터리 「레드 헌트」는 큰 역할을 해냈다. 특이할 만한 점은 제주와 전혀 연관 없는 부산 출신 조성봉씨(42)가 「레드 헌트」 제작자였다는 점이다. 그가 제주에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40여분을 내리 달려간 곳은 역시 동부의 어느 중산간 마을.

「레드 헌트」의 제작 동기가 궁금했던 탓에 대뜸 제주와의 인연을 물었다. “내가 제주 땅을 밟은 것은 이외로 「레드 헌트」 제작을 위해 찾은 것이 처음이었다. 처음엔 광주항쟁을 다큐로 만들려 했으나 한국현대사의 근원지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거슬러 올라간 것이 제주4·3”이라며 “그때까지도(96년) 잘 알려지지 않은 제주4·3은 제주도만의 비극이 아닌 한국현대사의 비극임에 충분히 의미 있게 다가왔다”

조씨의 제주 인연은 이로부터 시작된다. 96년부터 기획, 제작된 「레드 헌트」는 97년 인권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4·3을 전국적으로 알려냈다. 하지만 서울다큐멘터리 영상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으나 상영 취소됨은 물론 「레트 헌트」를 상영한 인권영화제 주최 서준식씨 및 대학생, 인권운동가, 제작자 조씨 등은 국가보안법 위반(이적표현물 제작) 혐의로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조씨는 “몸이 조금 피곤할 뿐 아무런 제약도 되지 않았다”며 “레드 헌트 제작 때 ‘육지것’이 4·3을 들어준다며 고마워하던 할머니·할아버지들을 잊지 않고 있다. 이후 더욱 힘을 얻어 집단학살의 참상을 위주로 다룬 「레드 헌트2」를 만들 수 있었다”고 밝혔다.

「레드 헌트」로 시작된 제주인연은 질기게 그를 붙잡고 있다. 현재 조씨는 해방 이후 한라산·지리산 빨치산을 담은 다큐멘터리 「산사람」(가칭) 제작 1차 조사 겸 4·3을 위해 제주를 찾은 상태다.

특히 목적이 있기보다는 제주의 사람, 자연을 만나다 보니 자연스레 제주의 역사가 다가온다며 제주 사랑을 은근히 드러내던 그는 “관광이란 미명하에 역사에 대한 기록은 없고 관광지 표지판으로 둘러 쌓인 제주를 보면 4·3진상규명은 허울뿐이 아닌가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며 꼬집었다.

또 “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된 것을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진실한 저항의 의미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채 수정되고 덧붙여졌다. 기득권 세력을 한껏 담아낸 우리 사회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 같다”며 아쉬운 속내를 밝힌 후 “그러나 한계는 충분히 극복되는 성질의 것이 아닌가. 사회 모두가 반성, 성찰해야 가는 일이다. 다음세대 혹은 우리 모두가 이뤄내야 할 또 다른 몫”이라며 덧붙임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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