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의 진상이 밝혀지지 못한 채 죽는 줄 알았는데 특별법 제정과 함께 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돼 감개가 무량하다” 4·3 당시 무장대에서 활동하다 검거돼 옥고를 치른 끝에 일본으로 건너가 생활하다 1963년 김봉현씨와 함께 좌익적 시각에서 「제주도 인민들의 4·3무장 투쟁사」를 출판한 김민주씨(70·일본 지바현).

김씨는 “김대중 대통령 취임이후 4·3 해결에 큰 일보를 내딛게 됐다”며 “정부는 이제 제주도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4·3과 관련한 현안들을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씨는 책을 저술하게 된 이유에 대해 “4·3 이후 일본으로 밀항한 제주도민들이 상당수에 이르렀다”며 “4·3을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 김봉현씨와 함께 일본에 건너온 제주출신들을 일일이 만나 증언을 채록, 이를 정리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4·3이 발생한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일제에서 해방되면서 능동적으로 맞이하지 못했고 외지에 나가 있던 제주인들의 귀환과 이로 인한 실직난, 극심한 흉년, 일제에 가담했던 사람들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것도 한 원인이다”며 “미국이 한국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이승만 대통령은 서북청년단을 제주에 내려보내는 등 강경진압함으로써 제주도민들의 피해가 엄청났다”고 말했다.

한편 김씨는 조천중학교에 다니다 무장대에 가담했다가 1949년 4월 붙잡혀 형무소에서 복역했으며 1957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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