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찬 4·3유족회장은 폭도자식이라는 질시와 냉대를 받으며 자랐다. 공직생활을 하면서는 비밀취급을 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하고 그저 4·3이 밉기만 하던 날도 많았다. 그런 그가 이제는 유족회의 수장으로 4·3진상규명 운동의 최선봉에 섰다.

△유족회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했습니까
2000년 3월 4·3행방불명인 유족회에 참여하면서부터죠. 처음에는 주도적으로 활동하지 못하고 이듬해 통합 유족회 창립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전면으로 나섰다고 할까요. 2년 임기를 끝내고 올 초 다시 2년간 재신임 받았습니다. 책임이 막중합니다.

△공직생활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4·3을 바라보는 인식차이는 없습니까
유족들 누구나 겪은 사실이지만 어릴 때 교육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폭도자식으로 손가락질 받을 때는 아버지가 4·3이란 역사가 너무나 원망되더라고요. 공직에 있을 때는 내 생각을 직접적으로 얘기할 수 없었다. 공직에 있을 때는 비밀취급은 아예 할 수도 없었습니다. 일종의 연좌제에 의한 피해라고 할 수 있죠.

△4·3운동에 유족회가 전면에 나서고 있는데요
89년 발족한 민간인희생자 유족회가 10년 넘게 유족들을 대변했습니다. 당시는 이념적인 문제가 있어 유족이면서도 유족회 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그런 게 없습니다. 민간인희생자 유족회나 행불인 유족회나 4·3의 진상을 규명하자는 데는 모두가 한마음입니다.

△진상보고서가 채택됐는데요 앞으로 유족회의 중심활동은 무엇입니까
유족들은 55년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기다려왔습니다. 보고서 채택을 유족들은 크게 환영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희생자 결정이 순리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당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공권력에 대한 잘못에 대한 공식 사과를 받아내는 게 첫 번째 목표가 될 겁니다.

△진상보고서 채택은 4·3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데요
과거문제는 정부의 공식사과로 청산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는 걸 느낍니다. 4·3평화공원이 조성돼 위령 공간으로 자리 매김해야 하고 평화재단 설립도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유족들 가운데 생존해 있는 분들은 고령이며, 2세들 가운데서도 생활고를 겪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들에 대한 보상과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도 유족회가 해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더불어 4·3이 남기 평화와 인권이란 교훈이 후세들에게 올곧게 전달될 수 있도록 사회의 거울이 되는 것도 유족회의 몫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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