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민일보 4·3취재반이 10년동안의 취재경험을 토대로 지난 1994년부터 1998년까지 발간한 「4·3은 말한다」 전5권과 이를 일본어로 번역한 「제주도 4·3사건」 전4권. 반세기 동안 무참하게 왜곡된 채 묻혀졌던 초토화작전의 실상과 그 허구성들이 마을별 취재를 통해 낱낱이 드러났다.  
 
제주 4·3이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 최대의 비극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전국화 하는 데는 공신력 있는 언론매체의 보도가 큰 힘이 됐다. 4·3의 진실을 발굴하고 끊임없이 진상규명을 위해 보도한 대표적 언론은 제민일보와 제주MBC, 그리고 한겨레를 꼽을 수 있다.

4·3 발발 40주년을 맞는 1988년 4·3논의가 침묵을 깨고 폭발적으로 분출하기 시작했다.

당시 제주신문은 4·3특별취재반(반장 양조훈:현 4·3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 수석전문위원)을 구성, 1년간의 준비 끝에 1989년 4월 3일을 맞아 기획물 「4·3의 증언」연재를 시작하며 직접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제주신문은 참언론운동을 벌이던 기자들을 1990년 1월 집단 해고함으로써 4·3취재반 기획물 「4·3의 증언」연재도 중단됐다.

▲제민일보 4·3 연재 시작
제민일보는 제주신문 폐간 후 해직기자들이 중심이 돼 참언론의 깃발을 내걸고 창간한 후 또 다시 4·3취재반(반장 양조훈)을 구성, 1990년 6월부터 기획물 「4·3은 말한다」는 제목으로 4·3연재를 시작했다.

특히 제민일보의 4·3 진상규명 작업은 진상규명 운동을 선도했으며 당시 제주를 찾은 외국언론들이 제민일보 4·3취재반을 취재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1993년에는 ‘한국기자상’을 수상, 전국 언론계의 화제를 모았다.

제민일보는 창간 후 13년간 4·3과 관련해 수많은 특종을 발굴 보도했다.

1991년 4월 3일을 맞아 제민일보는 “1949년 현재 인명피해는 1만5000명이며 이중 80%이상이 진압군에 의해 희생됐다”는 내용의 비밀문서를 발굴해 대대적으로 보도, 그동안 풍설로만 전해져 오던 희생규모와 사건 성격의 일단을 밝혔다.

1996년 4월 2일자에는 ‘4·3때 학살을 주도했던 책임자가 아편중독자였다’는 보도를 통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여론을 더욱 확산시켰다.

4·3계엄령이 절차를 갖추지 않은 불법(97년 4월 1일자)이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폭동으로 일관됐던 국정교과서의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후 이에 대한 끊임없는 정정을 요구, 부분적으로 수정되는 결과도 이끌어 냈다.

▲『4·3은 말한다』발간
1994년 3월 10일에는 제민일보 4·3취재반이 그간 신문지면을 통해 연재했던 「4·3은 말한다」를 중심으로 일부 내용을 다듬고 보완해 『4·3은 말한다』(전예원 간)라는 제목으로 2권의 책을 펴냈다.(당시 4·3취재반 양조훈·서재철·고홍철·고대경·김종민·강홍균 기자)

이후 1998년 제5권을 출판했다.

제주출신 재일동포 2세인 김중명씨와 문순실씨는 『제주도 4·3사건』(신간사 간)이라는 제목으로 제4권까지 일본어로 번역 출판하기도 했다.

특히 제민일보 4·3취재반 김종민 기자(현 4·3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 전문위원)는 기자생활 전부를 4·3 취재에 헌신, 4·3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방송과 한겨레
신문에 제민일보가 있었다면 방송은 제주MBC였다.

제주MBC는 89년 4월 ‘현대사의 큰 상처 제주4·3사건’을 내보냄으로써 4·3 진상규명 작업을 시작했다.

제주MBC의 4·3보도는 당시 보도국장이었던 이문교씨(전 제주발전연구원장)의 결심이 컸다. 이 전 보도국장은 1960년 제주대 재학생 시절 동료들과 함께 4·3사건 진상규명동지회를 결성, 조사활동을 펼치다 군사정권에 의해 고초를 겪은 상처를 갖고 있었다.

제주MBC의 4·3보도 중심에는 송창우·김건일 기자가 있었다.

1990년에는 잃어버린 고향을 통해 4·3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잃어버린 고향’프로그램을 방송, 한국기자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8년에는 북촌리 집단학살사건을 다룬 ‘북촌사람들’을 보도했으며 99년에는 ‘다랑쉬굴의 침묵’을 제작 보도하는 등 4·3의 진실규명과 대중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쳐왔다.

제주MBC는 보도국 못지 않게 편성국에서도 4·3진상규명에 힘을 써왔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4·3관련자들에 대한 증언프로그램 ‘영상채록 4·3’을 107회 보도했다.

이밖에 99년 서울MBC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첫 회에 제주4·3을 다뤄 4·3의 전국화에 많은 힘을 실었다.

KBS제주방송총국은 김영훈 기자가 지속적으로 4·3을 보도하며 4·3문제를 알려왔다.

중앙언론사 중 4·3을 전면적으로 다룬 언론사는 한겨레가 유일했다.

한겨fp는 1988년 4·3위령제부터 본사 기자 2명을 제주에 파견, 취재를 했으며 매년 4·3 때면 사설과 칼럼 등으로 역사적 진실규명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한겨레 제주주재기자인 허호준 기자는 제주4·3연구소 연구실장을 역임하며 제주4·3에 대한 미군 및 미 국무성의 각종 자료 발굴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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