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의 논의를 촉발시키는데 제주출신 국내·외 작가들의 소설 작품은 큰 역할을 담당했다.

현기영씨의 「순이삼촌」, 「아스팔트」, 「마지막 테우리」 등의 재경 인사의 소설 작품을 비롯해 재일동포 소설가 김석범씨의 「까마귀의 죽음」, 「화산도」, 김태생씨의 「골편」 등의 작품들은 소설의 형식을 취하며 망자의 영혼과 억울함을 전달하는 훌륭한 매개체였다.

그 중 주목되는 것은 재일동포 김석범씨의 장편소설 「화산도」.

76년 일본 문학월간지 「문학계」에 연재를 시작한 이래 97년 문예춘추사에서 전 7권으로 완간 될 때까지 21년 동안을 매달려온 역작이다. 김씨는 이 작품으로 84년 아시히신문의 오사라기지로상, 98년 일본 마이니치 신문사의 제39회 마이니치 예술상을 수상했다. 일본 문학계는 당시 「화산도」를 ‘정치적 문제성은 물론 사회 각 계층의 인물의 다층적 조명과 제주의 풍토, 민요, 신앙, 신화를 담아 낸 일종의 제주도지다. 일본어로 한국현대사를 그려야 하는 고난 속에 완성된 일본어 문학의 자랑이다’고 호평했다.

「화산도」는 4·3사건의 배경과 48년 5·10단선이 제주에서 거부되는 과정(제1부)과 48년 4월8월부터 이듬해 무장대 총책 이덕구가 사살되는 시점(제2부)까지 조명하고 있다.

김씨의 「화산도」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4·3 소재의 다른 소설과 달리 무장대로 시선을 돌린 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4·3을 주도한 사람들이 남한으로부터는 반정부 분자로, 북한으로부터는 반혁명 분자로 몰렸던 상황에 주목하게 됐다”는 김씨의 집필 동기에서도 알 수 있다.

현기영씨의 소설 「순이삼촌」과 비교했을 때 더욱 확연히 구분 지어진다.

현씨의 작품 세계 속 4·3은 냉전적 체제하의 무고한 희생자 ‘민중’에 집중된다. 즉 무장대와 토벌대사이에 끼여 죽음을 당해야 했던 민중들의 억울함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냉전체제 속 기득권과 폭력에 대한 비판 등을 통한 피해의식의 극복, 분단의 극복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반면 김씨의 「화산도」는 감히 꺼낼 수 없었던 무장대의 입을 통해 소설을 전개시킨다. 따라서 현씨의 소설배경이 대학살이 주로 자행됐던 10월을 전후했음과 달리 「화산도」는 1948년 4·3 발발 전후를 비교적 상세히 다룸으로써 항쟁에 참여해 가는 과정 속에 인물들과 당시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통해 4·3을 보다 다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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