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특별법 제정과 정부의 첫 공식문서인 4·3진상조사보고서 채택은 100만 내외 도민과 전국의 양심 있는 인사들이 일궈낸 ‘역사적 승리’였다. 이는 반세기동안 짓눌려온 도민들의 한을 털어 내고 ‘평화와 인권’의 탄생을 알리는 일종의 ‘거사’였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 타지방에서 혹은 머나먼 이국 땅에서‘4·3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외친 이들이 없었다면 과연 제주 4·3이 55년의 긴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을까.

이들은 재경 및 재일본 유족회와 4·3 범국민위원회 등의 이름으로, 또는 언론인·소설가·시인 등의 신분으로 4·3 논의를 대중화했고 법 제정과 보고서 채택에도 많은 공을 세웠다.

#4·3 50주년 사업 범국민위
오랜 기간 금기시 돼 왔던 제주 4·3논의에 처음 불을 지핀 것은 지난 88년. 4·3발생 40주년인 당시 고 정윤형 교수에 의해 서울 여의도 여성회관에서 개최된 4·3학술행사가 4·3에 대한 첫 공개행사로 기록되고 있다. 이를 시발점으로 제주에 4·3연구소 등이 설립되고 신문 연재와 세미나 등이 활발하게 추진되기 시작했다.

특히 96년 11월 제주사회문제협의회 주최의 ‘제주 4·3특별법 제정’세미나가 종로 성당에서 열린 것을 계기로 “4·3은 더 이상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 다음해인 97년 4월 전국의 종교계와 학계 법조계 노동계 문화예술계 시민운동단체 등의 지도급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제주 4·3 50주년 기념사업 추진 범국민위원회’가 결성되면서 이러한 인식을 수면위로 끌어올렸다.

당시 4·3반세기를 앞두고 전국규모로는 처음 출범한 범국민위에는 김찬국 김중배 강만길 정윤형 김성수 박형규 이돈명 신용하 김창국 김동완 김승훈 김상곤 고희범 현기영씨 등이 참여해 4·3진상규명 활동을 대중화하고 4·3특별법 제정운동을 벌였다.

특히 허상수 고희범 강창일 김찬수 양한권 박찬식씨 등은 4·3특별법 제정안을 만들어 국회의원 등을 상대로 집중적인 ‘로비’를 벌이고 홍보지 발간과 국제학술회의 개최 등을 통해 4·3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참여를 이끌었다.

이들의 노력이 결국 범국민위 결성당시 채택된 △정부의 양민학살사실 인정과 4·3관련 자료공개 △4·3특별법 제정과 명예회복 조치 등의 목표가 오늘날 모두 성사되는 쾌거를 일궈냈다.

또한 범국민위는 98년 3월 학계 종교계 재야법조계 등 각계인사 100여명이 참여한 ‘제주 4·3 명예회복의 해 선포식’과 재외·제주도민 930여명의 ‘제주 4·3 명예회복을 촉구하는 도외 제주도민 선언’을 주도해 4·3문제를 만천하에 알렸다.

4·3연구소 등과 공동으로 발간한 「제주 4·3연구」는 역사와 법·의학·문학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 4·3을 연구한 전문가(김순태 서중석 정해구 황상익 김재용 김종민 박명림 김인덕 양정심 임대식 김성례씨 등)들의 논문을 묶어낸 책으로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99년 우수학술 도서’로 뽑히기도 했다.

범국민위는 재경 4·3유족회가 만들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범국민위가 98년 서울에서 개최한 4·3 추모행사와 진혼굿 등을 통해 만난 유족들이 99년 9월에 ‘재경 제주 4·3 희생자 및 피해자 유족회’를 결성하게 됐다.

강종호 이순자 부청하 김칠중 허상수 김익태 전희경 변현정 김명식씨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재경 4·3유족회는 제주도내 4·3단체와 유족 등과 연계하며 4·3해결을 촉구하는 단식투쟁과 시위를 벌였고 특별법 제정 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유족회는 3·1발포사건 기념사업과 세미나 등을 개최해 당시 묻혀있던 3·1발포사건의 잔혹성과 역사적 의미를 세인들에게 알렸다.

#재일본 4·3유족회
4·3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았다. 88년 일본 도쿄·오사카에서 김석범 김민주 문국주씨 등이 주축이 돼 ‘제주 4·3을 생각하는 모임’(탐라연구회)이 결성됐고 98년에는 강실 고석산씨 등이 주도하는 재일본 4·3유족회가 구성됐다.

특히 4·3을 생각하는 모임은 98년 한국현대사 연구가인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학 교수를 초청한 강연회와 학술심포지엄, 추도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일본인들에게 제주 4·3을 알렸다.

또한 ‘제주 4·3사건 55주년 사업실행위원회’(김석범 양명원 양석일 김수길 문경수 이덕웅 고이삼 조동현씨 등)는 10일 제주 극단 ‘한라산’을 초청, 도쿄에서 4·3공연을 개최하기도 했다.

4·3의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은 도서 출판을 통해서도 나타났다.

김석범씨는 「화산도」에서 해방 후 48년 남북분단에 반발했던 도민의 무장봉기와 군인·경찰·서북청년단에 의한 탄압과정을 그렸고 현기영씨는 「순이삼촌」을 통해 당시 금기시 됐던 4·3 논의를 이끌어냈다. 김민주씨는 「제주도 인민들의 4·3무장 투쟁사」에서 4·3때 일본으로 건너간 제주인들의 아픔을 묘사, 우리 역사의 최대 비극인 4·3에 짓눌렸던 이들의 한을 달랬다.<서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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