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많은 것을 체험하며 살고 있다.의식주 해결을 위한 기본적인 일상 활동에서부터,여행 중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기이한 사건을 경험하는 일,혹독한 감기에 걸려 잠시나마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던 일,아니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등 나라의 정치 지도자를 선출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체험을 한다.그러나 이 모든 체험이 우리들 각자의 삶에 언제나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더구나 교육적 가치를 갖는 것도 아니다.

우리들의 체험이 교육적 가치를 지니려면 몇 가지 조건이 요구된다.첫째,체험 이전에 체험자 자신의 능동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인간의 마음을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단지 우연한 체험이나 환경에 대한 단순한 반응에 내맡길 때 인간은 지적 성장과 사회성 형성이라는 교육목적을 실현할 수 없다.둘째,체험은 일의 과정 전체를 거쳐서 획득한 것이어야 한다.어떤 사태의 일부분만으로는 우리의 마음이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나무’만이 아니라 ‘숲’ 전체를 볼 수 있어야 전체 안에서 자신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또한 일의 과정 전체를 거쳐야 그 일을 이루고 있는 부분들 및 부분들간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셋째,체험 이후에 반성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아무리 능동적으로 일의 전체를 체험한다 해도 반성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다른 사람이 자신을 보듯 자신의 과거의 체험을 마음의 눈으로 재현하면서 당시의 사건,느낌,생각 등을 주목하고,반성 중에 생겨난 새로운 생각과 느낌을 종전의 것들과 관련지으며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교육적 성장에 다다를 수 있다.끝으로,체험에 대한 반성의 주체는 궁극적으로 배우는 사람임을 인식해야 한다.가르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 자신의 체험을 반성해 교육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뿐이지 배우는 사람에게 반성을 강요하거나 배우는 사람의 반성을 대신할 수 없다.

제 16대 국회의원 선거가 이제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이 번 선거는 1948년 제헌 국회이래 치러진 지난 15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사뭇 다르다.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이 번 선거를 유권자들의 체험 학습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우선 시민단체는 정당에서 공천하지 말아야 할 낙천자의 기준과 그 대상자를 공개적으로 발표했고,만일 정당이 시민단체가 선정한 낙천대상자를 공천할 경우 낙선 운동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함으로써,유권자들로 하여금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적 태도를 벗어나 보다 능동적으로 선거에 임할 것을 유도하고 있다.또한 시민단체는 선거법 개정 운동을 통해 유권자의 권리가 단지 선거 당일 누구를 찍느냐에 한정 된 것이 아니라 선거구의 설정,정당명부제도의 도입 여부,사전 선거운동,선거 운동의 주체와 방법 등 선거의 전 과정에 펼쳐져 있음을 드러내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을 환기시켰고 전체 선거에서 각 부분 요소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도 기여했다.아울러 시민단체는 후보자에 대한 정보 공개와 지역주의 타파 운동 등을 통해 유권자들로 하여금 종전의 선거 관행과 후보자들의 면면을 재조명하게 함으로써 과연 어떤 기준에 의해 후보자를 선택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나는 우리 나라의 유권자 모두가 시민단체의 활동에 힘입어 이 번 선거 과정 전체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반성하는 가운데 진정한 의미의 체험 학습을 하길 기대해 본다.<김민호·제주교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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