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독서토론회에 참가하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책 한권을 온전히 읽어낸다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이기에, 한 달에 한 권 책을 읽는 틀 속에 내 자신을 묶어 놓았다. 그러나 결국 3월의 선정도서는 반도 채 읽지 못했다. 어찌나 부끄럽던지.

그래서 3월 토론회가 끝나자마자 4월의 책을 장만하러 서둘러 서점을 찾았다. 이번엔 다 읽고 말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책을 집어든 나는 ‘산문집’이라는 글자를 보고 순간 너무도 당황하고 말았다. 작가와 제목으로만 평소 존경하던 작가의 소설을 읽게 될 것으로 잔뜩 기대를 한데다, 지금까지 살면서 산문이나 에세이 근처에는 가본적도 없는 편향된 글읽기를 해오던 터라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어쩌랴, 읽어야지. ‘술 마시듯 술술 읽어 내려가라’는 어느 벗의 격려에 힘입어 부담감을 떨쳐내며 읽어 나갔다.

이 책은 총 다섯묶음으로 이뤄져 있는데 작가도 밝혔듯이 소설을 쓰다가 남은 자투리글을 가공한 에세이들과 신문에 투고했던 글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그런데 소설 쓰기를 직업으로 하는 작가가 써서 그런지 너무 강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유하지도 않으면서 소설 읽듯이 읽히는 것이 묘한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

유년시절의 기억으로 시작되는 첫 장의 글들을 읽을 때는 덩달아 나의 어린 시절이 오버랩 되어 빙그레 미소짓기도 했고,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자본의 파괴성을 폭로하고 개발의 미명 아래 무참히 짓밟히는 고향땅을 애달파 할 때는 작가와 같이 상실감에 빠져들었다.

또한 1990년대 이후 감성의 문학이 이성의 문학을 누르고 급기야 소비향락주의 저급문화의 선두에 선 것을 질타하는 부분은 이순의 나이에 들어선 작가의 준엄한 꾸지람을 듣듯 내 자신이 스스로 반성할 것은 없는지 찾기도 했다.

작가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렇듯이 고향땅 제주와 4·3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과 끝을 관통한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섬땅 제주에 대한 애착과 애증이 묻어 있는 작가의 내심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이 지닌 장점이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로, 스트레스는 술로 풀고 숙취는 날된장국으로 푼다는 영락없는 모주꾼 현기영 작가의 솔직 담백함의 긴 여운이 당분간 내 머리속을 둥둥 떠다닐 것이다.<홍순아·제주주민자치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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