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처럼 바람이 세차게 불던 4·3에 신산공원의 4·3위령제를 다녀와 무거운 마음이 가득했었다.

그 며칠 뒤 형광빛 유채가 날리는 길을 따라서 남제주군 성산읍 삼달리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희망이란 단어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조용하고 깨끗한 동네를 들어서는 길에 폐교된 삼달리 분교를 빌려 갤러리를 만들고 있는 사진작가 김영갑님을 만났다.

루게릭 병(근육이 점차 마비돼 가는 희귀병)이란 불치의 병을 앓고 계신 그분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그에게 있어 제주란 삶에 지치고 찌들은 인간을 위무하는 영혼의 쉼터이고, 그저 바라만 보아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평삼심을 유지할 수 있는 ,영원한 안식처라고 한다.

그의 사진들속에 표현된 제주의 바람은 그의 말처럼 평온함이었다.

그리고 들어서는 마당엔 작을 돌들로 꽃길이 꾸며지고 있었다. 그 역시 평화의 삶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죽음이란 것에 직면하면 한없이 약해지고 포기하는 삶을 살게되거나 세상을 원망하기도 하는데 그는 그런 상황에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공사중인 분들에게 이것저것 얘기하고 조용히 움직이는 모습에 안쓰러워 뭔가 도울 일이 없냐고 물으니 와서 봐주고 가는 것만 해도 행복하다고 했다. 그러한 상대방의 안쓰러움조차도 초연해져 있는 것이었다.

나의 얼굴이 붉어지게 만드는 그의 웃음엔 용서도 포함돼 있었다.

동행한 분이 이 폐교를 언제동안 대여했냐고 물으니 5년이라고 했다.

그리고 교육청에서 재계약도 해주기로 했다고 한다. 그에겐 5년 뒤의 삶도 남아 있는 것이다.

기쁨과 행복함보단 슬픔과 아픔이 그를 더 성숙시킨다는 그의 말에 나태한 삶을 살아온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됐다. 복잡한 세상 속에 그의 갤러리는 고요함 그 자체였다.

나서는 길에 듣게 된 그의 말이 가슴에 새겨진다.

“건강하게 되면 한번 놀러갈게요”

그렇게 희망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주말에 아이들 데리고 삼달리에 한번 놀러가 보세요.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희망이란 걸 보여주세요.

글을 쓰면서 선생님에게 누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돼 전화를 드렸더니….

전화기 너머로 웃음이 전해져온다.

“기다릴게요. 언제든 놀러오세요”<윤민경·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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