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항 요법은 유리컵처럼 생긴 기구로 공기를 빨아들이는 일종의 물리요법이다. 이것을 이용하여 피를 뽑아 내기도 하고 인위적으로 멍들게 하여 진통 효과와 국소의 혈액순환 촉진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항간에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신경통, 근육통을 막론하고 아픈 자리마다 한 전에 한 사발씩 아까운 피를 뽑아 빈혈을 일으키거나 탈진시키는 일이 보고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피를 활동시키는 것은 기운이니 혈액순환과 혈관 운동을 왕성하게 하려면 기운을 차려야지 피만을 빼서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렇게 부항 요법을 맹신한 나머지 피를 뽑는 것을 능사로 여기는 경우가 있고 혹은 다쳤을때 피를 뽑지 않으면 무슨 부작용이나 있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이 있어 이 글을 쓴다.

부항으로 뽑혀 나오는 피는 나쁜 피가 아니다. 흔히 타박상을 입거나 삐어서 붓고 아파 나쁜 피를 좀 뽑아 달라 하지만 피가 몸 구석구석을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이 불과 25초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살아 있는 몸은 잠시도 쉬지 않고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피가 멈추어 순환하지 않으면 그 조직은 조만간 썩어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다쳐서 붓고 아프고 멍든 그 자리도 피의 흐름이 좀 더디다 뿐이지 말 그대로 나쁜 피가 고여 있는 것이 아니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하게 된다.

또 멍이라는 것도 다쳤을 때 순간적으로 약간의 출혈이 있었던 것이 피부조직에 배어들어 시퍼렇다가 차츰 주위로 퍼지면서 연해져 시간이 지나면 점점 흡수되어 완전히 없어지게 된다. 부항으로는 이렇게 베어 든 멍을 제거할 수도 없거니와 제거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가령 골절환자가 두어 달 후에 골절도 잘 접합되고 일정 기간 물리 치료로 완쾌되었을 때 피 한방울 뽑지 않고도 아무런 부작용 없이 잘 나았지 않은가?
피를 뽑는 것은 어디까지나 모세 혈관에 침을 지르든지 부항으로 강하게 빨아들여 생피를 인위적으로 출혈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시적인 효과가 났다면 이렇게 강한 신경자극을 했기 때문이지 피를 뽑았기 때문은 아니다.

소중한 피를 뽑지 않고도 아픈 곳을 잘 주무르든지 뜨거운 찜질을 하든지 침을 놓는 것 자체가 신경자극과 함께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장문규·한의사·제민일보 의료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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