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지배하지도, 업신여기지도 않는 세상 꿈꾸며

4월 어느날인가 나와 같이 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한 아이로부터 선생님 4.3이 뭐예요? 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 질문을 받는 순간 어, 그건 말이지... 하고 말을 얼버무렸다. “선생님도 사실 4.3에 대해 잘 모르겠어. 그래서 우리 이번 기회에 4.3에 대한 책을 읽고 한번 진지하게 얘기해 볼까?”하고 위기는 가까스로 모면했지만 그 날의 일이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하던지. 그래서 읽게 된 책이 박재형 선생님이 쓰신「다랑쉬 오름의 슬픈 노래」(김상남 그림/베틀북)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어찌하여 이 마을에 오셨습니까/놀러 왔습니다 놀러/놀러 왔습니다 놀러/’
어디선가 많이 듣던 낯익은 이 노래가 이 책을 다 읽고나니 너무나도 슬프게 귓가에 쟁쟁거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아름다운 고장이 한때는 이상한 도깨비 나라였다니. 그 도깨비 나라에 살던 경태와 종국이 승준이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그게 가장 궁금했다.

이 책의 주인공 경태는 어쩌면 우리 아버지, 우리 삼촌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형은 군인들의 총에 맞아 죽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산사람에 의해 불 타 죽고, 누나는 어쩔 수 없이 서청 사람한테 시집 보내야 하고. 이 기구함을 고스란히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우리들의 아버지, 그리고 삼촌들.

해마다 4월이면 4.3진상규명 이니 4.3위령제 니 하는 소식이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오르락 내리락 했지만 심각히 나의 고민으로 받아들였던 적이 없다. 그저 우리 조상들이 한때 겪어야 했던 힘들었던 일 이라는 남의 집 제사 얘기하듯 했던 나의 무지함과 비정체성에 일침을 가하는 고맙고도 슬픈 노래를 다시 듣게 됨이 기쁘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4.3은 스스로 일어설 준비를 하지 못한 혼란의 시기에 힘으로 통치하려 달려든 나쁜 손님들(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집안 사람들만 억울하게 당한 아픈 역사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경태도 억울했고, 민수도 불쌍했다. 이 아픈 역사를 우리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전할까. 다시는 경태나 민수와 같은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힘을 기르자고 말해야 되나? 아니면 우리 조상들이 이런 어려움들을 겪으면서 자라왔기 때문에 존경심과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고 해야 하나? 그 모두를 포함하는 가장 적절한 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 말인 것 같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지도 않고 누가 누구를 업신여기지도 않는 장난으로라도 총을 겨누지 않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보자꾸나 아이들아!
<강은미·독서논술지도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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