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0년, 대학을 졸업한 후 청운의 뜻을 품고 지역신문사에 기자로 입사했을 때였다. 어머니가 말했다.
“하필이면 기자가 뭐냐?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학교 선생하면 안되니?”
“아니, 어머니, 기자가 어때서요?”
“기자 그거 왜놈 순사 같은 거 아니냐?”
“에이~, 아녜요. 왜놈 순사가 아니라 오히려 독립운동가 같은 거예요.”
32년 생인 어머니는 어릴 때 봤던 일본 순사와, 지역유지로 행세하며 온갖 원성을 사고 있던 지역일간지 주재기자들의 모습을 어느새 동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어머니의 뇌리에서 왜놈 순사의 모습을 지워드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온 것 같다. 지난 98년 IMF 시기에 시민주주를 모아 일간지를 만들어보자는 무모한 작업에 나서게 된 것도 그런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아니었나 싶다.

다들 안될 거라 했지만 우린 창간에 성공했고, 지난 4년 간 그야말로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신문을 만들어왔다. 기존의 지역언론들이 토호·기득권세력의 대변지로 전락해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제대로만 한다면 어렵잖게 성공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창간 5년째로 접어든 지금 우리는 그 믿음이 너무 순진했음을 느끼고 있다. 명색이 ‘개혁신문’인데, 연감을 만들어 강매할 수도 없고 ‘대포광고’를 때릴 수도 없다. 관공서나 기업체에 은근히 압력을 넣어 광고를 따내던 시대도 지났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경영혁신을 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제대로 컨설팅 한번 받아볼 돈도 없다. 이미 기자들 사이에선 “언제까지 이슬만 먹고 살라는 말이냐”는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결국 대안이라고 나오는 이야기라는 게 ‘대자본을 물어오자’는 것이다. 그러나 자생구조가 안되는 언론이 대자본을 수혈한다고 해서 흑자로 전환되고 노동자의 임금이 획기적으로 오를 수 있을까. 이미 토착 대자본이 소유해온 다른 지역신문의 사례나 경험을 봐도 그게 환상이라는 게 증명되고 있다. ‘개혁언론’의 정체성은 퇴색되고 ‘매판언론’으로 변질돼 똑같은 고통을 연장하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안이 없다. 어머니에게 ‘일본 순사’라는 욕을 먹더라도 기자가 직접 광고 수주에 나서든지, ‘관청엔 관폐, 기업엔 민폐’만 끼치는 존재로 전락하지 않고서는 살아날 길이 없다.

실날같은 희망 중 하나가 지방분권과 ‘지역언론지원 특별법’이다. 그러나 이 또한 이미 사이비언론으로 전락한 지역신문이나 기득권층의 방패막이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언론까지 지원·육성해서는 안될 일이다. 소유구조의 건전성이나 편집권독립·경영투명성·사주의 도덕성·주재기자 운영의 투명성·노동환경과 임금 등 지역언론 지원자격을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다. 지역 내부의 혁신없는 지방분권이 토호·기득권의 권력강화를 의미하듯이, 언론개혁이 전제되지 않은 지역언론 육성은 ‘토호·매판언론’의 입지강화만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역언론이 중요해도 ‘일제 순사’를 지원할 수는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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