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콩팥이 다 망가져 노폐물배설을 제대로 못하는 만성신부전증 환자가 이런 저런 요인에 의해 늘어가고 있다. 이런 만성 신부전증의 치료에는 크게 투석과 신장이식수술이 있으며 투석은 다시 혈액투석과 복막투석으로 나눌 수 있다. 복막투석은 가정에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복부에 작은 튜브를 꽂고 지내야 하고 복막염 등으로 진행되기 쉽기 때문에 스스로 관리하기가 수월치 않아 훨씬 많은 환자들이 혈액 투석에 의존하고 있다. 이식수술 외에는 잃어버린 신장기능을 되돌리는 근원적인 치료가 불가능한 불치의 병이지만 정기적인 투석 등으로 잘 관리한다면 어느정도 사회적 활동이 가능한 것이 또한 만성신부전증이다. 혈액투석을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선행 조건이 있다. 이른바 동정맥류라고 하는 것으로 환자의 혈액을 인공신장기라고 불리는 투석기계에 옮겨주는 통로 구실을 하게 된다. 대개는 왼쪽(왼손잡이에서는 오른쪽) 팔목부근의 정맥과 동맥을 이용하여 수술로 만들게 되는데 아쉽게도 그곳 혈관이 이미 망가져 쓸 수 없게 된 경우가 적지 않다. 오른팔(왼손잡이에서는 왼팔)로 옮겨 혈관을 찾을 수 있다면 아직 실망할때가 아니나 양쪽 손목에 적당한 혈관이 보이지 않는다면 의사와 환자의 고민이 시작된다. 팔의 위쪽이나 목부근에 수술을 하기도 하고 인조 혈관을 사용하는 방법 등이 있지만 시술도 어렵고 합병증도 훨씬 많아 그저 이미 없어진 팔목의 혈관을 헛되이 그리워할 뿐이다. 신장질병 교과서에는 투석치료가 필요할 지도 모르는 환자에서는 함부로 혈관주사를 놓지 않도록 권유하고 있고 그 혈관에서 채혈도 금지하는 등 팔목의 혈관하나가 생명을 살릴수도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부전증의 한가지 원인이 되는 당뇨병이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 나라고 만성신부전증이라는 병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무서워하는 암에 대한 준비로 암보험을 든다면 예견할 수 없는 만성신부전증에 대한 보험은 거의 모두에게 주어진 팔목의 혈관을 소중히 간직하는데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처럼 소중한 팔목의 혈관이 정당한 대접을 못 받고 있다. 의료인들도 당장 투석을 앞둔 환자가 아닐 때는 크게 고려해 주지 않는 듯하다. 흔히 말하는 링거주사 꼽기에 가장 쉬운 혈관이기도 하다. 몸살로 피곤하다고, 연로하신 어머니 힘내라고, 가벼운 마음으로 영양제 한대 맞다가 이렇듯 소중한 건강자원하나를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혈관수술을 앞둔 환자상담을 하다가 “혈관이 좋지 않군요. 저처럼 이런 혈관이 있으면 아주 좋은데요” 하고 나의 팔을 보여 주려는데 아뿔사 얼마전까지 잘 보이던 굵은 혈관이 잘 보이지 않는다. 몇해전 심한 편도염 때문에 음식을 잘 못 먹어 포도당주사 맞은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문인가? 혹시라도 내가 투석 치료할 필요가 있어 수술대에 누웠을 때 혈관이 없어 고생한다면 이 때문이리라.

<이현동·외과전문의·제민일보 의료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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