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경우 이름이 바뀌든 대표이사 등 임원이 바뀌든 그 주주가 바뀌든 회사가 종전에 지고 있던 채무는 그대로 유지됨은 너무나 자명하다. 회사가 다른 회사에 합병되는 경우에도 새 회사는 종전 회사의 빚을 그대로 떠안게 된다.

그런데 구멍가게를 새로 사서 영업을 시작하게 되는 사람도 종전의 간판을 그대로 둔 채 영업을 하게 되면 회사처럼 가게를 매도한 사람의 빚을 그대로 떠안게 된다. 무슨 이런 악법이 있느냐고? 구멍가게를 매도한 사람에게 돈을 대주고 물건을 대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법의 배려이다. 이를 가리켜 상호를 계속 사용하는 영업 양수인의 책임이라고 하는데 상법에 정해져 있다.

따라서 구멍가게를 새로 산 사람이 판 사람의 빚을 떠안지 않으려면 우선 상호를 바꿔 간판부터 갈아치워야 한다. 옛 상호가 아까워서 적당히 비슷하게 고치다간 큰코 다치니 아예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 사업자등록도 종전의 것은 폐업신고하고 새로 상호를 정해서 해야 함은 물론이다. 상호가 널리 알려져서 바꾸기가 아깝다면 법원에 가서 주인이 바뀌었으나 새 주인은 옛 주인의 빚을 떠안지 않았노라는 등기를 하거나(이것은 좀 어려우니까 아무래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옛 주인과 새 주인이 연명으로 그러한 뜻을 채권자들에게 일일이 통지해야만 횡액을 면할 수 있다.

물론 종전의 구멍가게를 인수하면서 재고품이나 집기시설 등 물건만을 양수하고 그 채무는 인수하지 않은 사람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으나. 구멍가게는 규모가 작아서 재고품과 집기시설이 영업조직의 전부나 다름 없으므로 단순히 물건만 매매한 것인지 통째로 가게를 매매한 것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워서 시비가 생길 수밖에 없다.

구멍가게를 판 사람도 자신의 채무자가 주인이 바뀐 사실을 모르고 새 주인에게 빚을 갚아버린 경우 그에게 다시 변제를 요구할 수 없다. 그러니 미리 양도 사실을 통지해두어야만 한다.

남이 장사하는 데에 자기 이름이나 상호를 빌려주었다가는 자칫 그 사람과 같이 빚을 물어야 한다. 이름을 소중히 하지 않고 함부로 내돌려서 남에게 자기가 장사하는 것으로 믿게 한 책임이다. 사업자등록 할 때 이름을 빌려주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세무서에서도 그 사업자등록을 한 사람에게 세금을 부과한다. 세금을 면하려면 세무서를 상대로 재판을 해서 자신이 진짜 주인이 아닌 것을 증명해야만 책임을 면할 수 있다.

금융실명제니 부동산등기실명제니 해서 모든 것이 실명화하는 것이 신용사회의 흐름이다. 이런 세상에 자기 이름 관리를 제대로 못한 사람은 그 만큼 손해를 감수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함부로 써서야 되겠는가...?
<양경승·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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