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도 예의가 있을까.그렇다.일반생활에서 예의를 존중하듯 건축에서도 예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건축에서의 예의는 재료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고 신중히 다루는 세심한 이해에서 출발한다.재료가 갖고 있는 원래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표현해냄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의 가치를 끌어낼 수 있다면 무기질인 건축재료에 생명이 부여된다.

제주인들은 자연의 재료를 정성으로 다룬다.자연의 재료에 ‘예(禮)’를 다할 줄 알았다.제주는 바람이 많다.바람에 의해서 길들여진 제주인들은 돌이라는 무기질을 소재로 건축활동을 폈다.예를 다해서일까.제주인이 하나하나 쌓은 돌무지의 흔적은 돌의 차가움보다는 인간의 훈훈함이 넘친다.

예를 존중하는 작가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이타미 준(이타미준건축 대표)이 있다.이타미 준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같은 사랑을 건축물에 쏟아낸다.

그가 제주에도 작품하나를 던져두었다.제주시에서 서귀포로 향하는 산록도로를 따라가면 핀크스골프장을 만나게 된다.이 골프장에는 2곳의 클럽하우스가 있다.산록도로를 사이에 두고 동남쪽으로 멤버스 골프클럽하우스가 있으며,북쪽에 퍼블릭 골프클럽하우스가 자리하고 있다.

이들 골프클럽하우스는 자연을 배격하기보다는 자연에 동화하려는 욕망이 표현돼 있다.

멤버스 클럽하우스는 지형 그대로의 모습이다.구릉지형을 최대한 이용,2층은 지면과 맞닿게 설계됐다.2층에 곧바로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식당에서는 제주만이 간직한 자연,즉 바다와 오름의 모습이 이곳을 찾는 이들의 눈에 곧바로 투영된다.피라미드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듯한 형상인 지붕의 정상부에는 천창(天窓)을 만들어 외부의 빛을 조심스레 흡수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의 이미지를 닮지는 않았다.재료가 그런데다 형상마저 낯설다.그래도 이곳의 자연과는 잘 호흡하고 있다.

이곳의 건축재료가 주는 맛은 남다르다.외부재료인 붉은 대리석은 캘리포니아의 적송 냄새를 풍긴다.또다른 외부재료로는 알루미늄주조물이 쓰였다.서로 다른 재료이지만 전혀 어설프지 않으며,재료끼리의 호흡도 잘 맞는다.재료를 고르는데 예를 다하는 이타미의 정성을 볼 수 있다.

이타미는 또한 폐허일 수 있는 건축을 지향한다.폐허일 수 있다는 것은 원시적인 자연과 닮은 모습이다.색이 바래야 멋이 나는 동판을 지붕의 재료로 쓴 것도 그런 뜻으로 풀이된다.그는 “건축에 있어 가장 결여돼 있는 것은 야성미와 따스함이다”라고 할 정도로 자연에 대한 깊이있는 탐구정신을 갖고 있다.<김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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