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제도아래서 선거는 일할 사람을 뽑는 절차이자 축제의 장이다. 이는 출마자나 유권자 모두에게 부여 된 신성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따라서 선거는 공정한 규칙에 따라 이뤄지는 일종의 경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 한국에서의 상황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선거 때마다 지역감정, 흑색선전, 금품살포가 사라져야 한다고 외치지만 출마자나 유권자나 이를 실천하는 건 드물었다. 당선에만 집착해 규칙을 지키려하기 보다는 불 탈법적인 운동을 스스럼없이 한다. 축제가 돼야 할 선거는 격렬한 전쟁터로 변했다.

선거가 끝난 뒤 당선자는 마치 개선장군처럼 환호를 하며 의기양양해졌다. 앞으로 어떻게 국민들을 위해 봉사할까하는 각오나 고뇌하는 표정은 찾을 수 없었다. 경기가 끝나면 서로를 찾아가 축하나 위로의 악수는 있어야 하는 게 최소한의 예의이다. 그러나 당선자나 낙선자나 자신의 경쟁자에 대해 배려하는 모습은 아예 기대하기 힘들었다. 표를 얻기 위해 머리와 허리를 숙였던 출마자는 당선이 확정되면 자세가 달라졌다. 금배지만 달면 거창하게 내걸었던 공약을 지키려는 노력보다는 당리당략을 좇는 데 정신이 팔렸던 게 전례였다. 그래서 4년이 지나면 공약(公約)이 대부분 공약(空約)으로 변하기 일쑤였다.

4.13총선은 망국적인 지역주의가 더욱 심해졌고, 탈 불법으로 혼탁했지만 종래와는 진일보한 선거개혁의 가능성을 높였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졌던 특징은 시민단체의 '유권자 심판운동'과 개정선거법에 따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전향적인 자세 변화였다. 그 결과 병역 세무 전과기록 등이 공개됨으로써 그나마 정당의 자의적 공천권 행사에 제동이 걸렸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신상과 경력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올바른 선택에 도움을 받았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은 70% 가까운 성공을 거뒀다. 영 호남과는 달리 충청권은 지역주의 타파의 가능성을 보여줘 찬사를 들었다.

이제는 과거와 같은 고질적인 건망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권의 일거수 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하고, 당선자들의 공약이행여부를 눈여겨봐야 한다. 그래야 선거개혁을 앞당기고 정치권의 수준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하주홍·코리아뉴스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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