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 16일, 남제주군 남원읍 의귀리에 자리잡고 있는‘현의합장묘’ 라 명하는 4·3희생자 봉분(3기) 이장사업이 진행됐다.

지금으로부터 54년 전인 (양력)1949년 1월 10일과 12일 양일간 국방경비대에 의해 주민 수십명이 학살되어 가매장되었다가 3개월이 지난 4월에는 같은 마을 사람을 시켜 유족들이 시신을 찾아갈까봐 민보단원을 동원해 이 곳에 묻어 놓았다.

이후 가족이 묻혀 있는 것으로 확신하는 유족들이 모여 유족회를 조직해 매년 두 차례 성묘를 해 왔고, 지난 1983년에는 억울한 죽음을 신원하고 영혼들의 의로움을 알리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

오전 5시 파묘제를 시작으로 오전 7시 개토식에 이어 7시 20분에는 파묘를 시작했다.

파묘한지 1시간여가 지나자 서쪽 무덤에서 반세기 동안 흙 속에 억울하게 묻혀있던 유골 한구가 발견되었다.

필자도 한구 한구 발굴되는 유골을 지켜보다 울분을 참지 못해 서쪽에 위치한 봉분 속으로 들어가 발굴작업에 동참했다. 1평 남짓한 이 묘에서만 17구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이 묘에서 나온 유골은 상태는 양호해 보였지만 가운데와 동쪽에 위치한 나머지 2개의 묘에서 발굴된 유골은 지대가 낮은 이유 때문에 그 형체가 많이 부식되어 있었다. 심지어 두골에 탄두가 박혀져 있는 유골도 있었다.

10시간에 걸친 작업 중 3개 봉분에서 발굴된 유골의 수는 39구(남자 15구, 여자 7, 10대 2구, 나머지 미상)지만 당시 학살된 유아의 시신은 오랜 풍화과정으로 발견되지 않았다. 이 밖에도 철모, 숟가락, 안경렌즈, 비녀, 탄알, 혁대, 군화조각 등 50여 점의 유물도 함께 발견됐다.
한 유족은 당시 시아주버니가 좋은 허리띠를 질끈 매고 다녔는데 하며 눈시울을 붉히며 통곡했다.

이제 반세기가 지나서야 가신님들을 신원하고자 양지바른 새 터로 유골을 이장한다.

무고하게 죽어간 4·3영혼들이시어! 이제 맺힌 한 푸시고 고이고이 영면하소서…

<김두연·제주도4·3사건희생자유족회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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