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적인 젊은 집단을 가리키는 말 가운데 하나인 ‘무서운 아이들’은 장 콕토의 소설「무서운 아이들」에서 유래됐다. 이 소설은 청소년의 심리를 주도면밀하게 분석한 것으로 유명하다. 줄거리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프랑스 중산층 가정이 무너져 내려가는 과정이다.

‘성난 젊은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 1950년대 영국의 젊은이들이 일으킨 문학운동이다. 전쟁 후의 사회현실에 대한 반감으로 일어났던 이 운동은 세계대전이 가져온 반인류적인 파괴와 절망감에 대한 반항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기성세대의 질서·권위·제도에 반발하여 독자적인 창작활동을 벌였다. 작품은 주로 보수적인 문화풍토와 허영과 위선에 찬 인간사회에 대한 비판이 주요 내용이다.

이 운동은 연극과 영화에까지 파급되는 등 사회 모든 분야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지만 반항 일변도였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권에도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젊은 세대가 있다. 이른바 396세대이다.

지난 4·13 총선에서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인 386세대는 현재 30대로서 80년대에 대학에 다녔던 1960년생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회가 386세대를 주목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 한국정치에 상당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는 희망때문이다.

이처럼 사회가 이들에게 거는 기대가 큰 것은 우리나라가 산업화 된 이후에 자의식이 처음으로 형성된 세대였고 권위주의적 체제에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집단적으로 맞선 세대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세대간의 이념적 또는 지역적 장벽을 허물고 미래의 한국정치를 이끌어나갈 주역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시각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당시 대학을 다니지 못한 사람에 대한 위화감도 그렇지만 386이라는 단어 자체가 한시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수직적 인간관계와 권위주의적이고 파벌중심의 한국정치를 바로잡을 사람은 현재까지 이들말고는 대안이 없어 보인다. 또한 新후삼국시대라 일컬어지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의 지역감정을 말끔히 씻어줄 사람도 이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이며 수구(守舊)집단인 정치권의 변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필연이 되고 있다.<김종배·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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